한영숙 시인 /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
아웅산 묘소 옆 17명 명단 앞에 우리는 시계를 거꾸로 감았다.
알 수 없는 폭발음이 들리고 수류탄 파편들이 순간 멍게 여드름으로 벌겋게 박혀있다.
마하무니불탑 개금 붙이듯 싯누런 시간들은 이국땅에서 겹겹이 수십 년, 개금(改金)과 사이를 해독할 수 없었던 X파일들이 오늘, 선명한 사진 한 장으로 인화되고 있다.
2015년 5월 13일 오후 6시 00분발 오탁번 외 절기시회 전사들은 그렇게 경건히 예를 올리고 있다. 저리 한 몸이었던 적 있었던가.
폭발물 잔해더미 속에서도 먼 길 찾아온 객(客) 고즈넉이 반기는 검은 꽃숭어리들, 먄마 뙤약볕, 꽃대마다 뉘엿뉘엿 각혈한 핏물들이 날것으로 피어오른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한영숙 시인 / 고슴도치
장 짧은 고슴도치 종일 쳇바퀴를 돌린다. 쉬이 소화된 시간들이 속도를 내며 팽팽히 하루를 펴 바르고 있다.
눈멀고 귀멀고 코먼, 괄약근 느슨해진 어머니. 겹겹이 우거진 푸른 기억 저편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설익는 은행 몇 알, 하릴없이 엉거주춤 아랫도리 짓이겨져있다.
족지, 뒤꿈치 가리지 않고 신나게 새끼감자 어미감자 들락거린 가난 뚫린 양말들, 종일 돌리던 방차 옆에 끼고 은하수 잔인하게 검판 위에 쏟아지는 밤 청춘을 알전구에 끼워 디자인하고 바느질했을.
처마 밑 배곯은 새끼제비 앞 다투어 경이를 물리든,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멀고도 먼 아득한 미수(米壽)를 돌고 돌아 돋보기 언밸런스 걸치며 4개의 눈을 가지고도 구불구불 피멍든. 녹물 흐르는 초침소리 쳇바퀴에 속속들이 흘리고 있다.
예수의 고난주기 같았을 등가시 찔린 붉디붉은 세월. 되돌아 갈 수도 돌진할 수도 없는 스타킹 코 나가듯 자신의 Dna 쭉쭉 나간, 끊기다 만 속정신 몇 올만이 식은 밥풀 침 발라 허옇게 묻힌 채 가늘게 떨리는 눈빛으로 절룩이는 시계추를 간신히 붙잡고 있다.
물 오른 중년의 고슴도치 세상을 달관하듯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自由를 향해 페달을 밟고 있는. 어둑새벽 덜커덩 소리에, 물레 감는 전성기 쪽진 어머니를 보는 듯 감구지회(感舊之懷) 울컥 가슴팍 찔러온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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