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엽 시인 / 벡사시옹
그림자 목소리로 끝이 있는 숨소리로 움직임을 잃어버린 저녁으로 지루하고 기름진 울음으로
나는 진공청소기입니다.
혀끝으로 바싹 마른 입술로 의미 있는 장난으로 진지하고 부담스럽게 뻔뻔하고 유쾌한 표정으로
그는 나를 기름지게 바라보았다.
먹고 자고 집에서 나와 돌아가는 것으로 어색하고 꼿꼿하게 화를 내며 음료수를 마시고 우연과 일상에서 다른 장면을 떠올리며 잡담하며 웃다가 화장실 들락거림으로
나야! 내가 살아있는 거야!
지상에 뿌리내린 농담 밤새 깨어 있는 냉장고 물방울무늬의 체온과 잡지, 버스, 자판기, 믹스커피에게
그는 나를 소음이라 했다!
의문을 갖는 생각의 끝에서 나를 요구하는 것이 마른 혀 위에서 놀라지 않도록 때론 가벼운 친근함으로 거만하지 않게 좀 더 멀리 가는 목소리 따라 매우 혼란스럽게
다시 처음으로
1. 벡사시옹 (vexations) :에릭 사티(Erik Satie)의 음악* 2. 에릭사티의 악상지시어로 쓴 시.
계간 『포엠포엠』 2016년 가을호 발표
최진엽 시인 / 저녁 여섯 시
보이는 것들은 몸을 숨기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단단해지던가요? 지하철에서 연주하던 남자의 목도리에 흰 달이 떴어요. 비상시 사용하는 문은 열리지 않았고요. 어디로 가는지 나무들의 윤곽이 서서히 사라지면 기다리지 마요. 창문이 환하도록 불을 켜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잿빛 고양이를 찾아요. 들어온 시간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랍니다. 일몰을 따라 골목까지 뛰어가지 않아도 낮은 노래는 부를 수 있어요. 온기가 흐르는 창문은 열어두세요. 세상의 모든 음악이 흐르도록 말이에요
계간 『미네르바』 2016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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