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상 시인 / 거위의 간
나는 혁명을 사랑하였다. 함박눈이 내리는 거리와 고양이들이 뛰어노는 자정의 놀이터 한적 한 곳에서 나누는 연인들의 키스를.
아버지 없는 세계를 산책하였다. 혈통이 없었다면 인간의 어머니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젖을 먹일 수 있었다.
한때는 체 게바라와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 같은 이름에 골몰하였으나 실연 후에야 알게 됐다.
아웅산 수지와 아돌프 히틀러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유대인과 아랍인 야훼와 알라가 이음동의어라는 것을.
기회비용의 세계를 위해 피의 의회는 백화점 명품관에 있고 출생은 희소성 속에서 성스러워졌다.
가장 사치스러운 요리가 미학인 것처럼 정의는 고풍스러운 레스토랑 테이블에 올려놓은 푸아그라였다.
야뇨증으로 인해 밤을 적실 때마다 성경책을 읽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허리띠와 형들의 회초리질
그리고 어머니의 기도. 십자가 매달려 세상을 용서한 예수와 야뇨증의 인과관계는 늘 회개를 요구했다.
도시락을 싸주지 못하는 가난한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숙제를 하지 않고 등교했던 일과 같은 부도덕들을.
한밤의 창세기는 수도 없이 태초를 창조했고 예수는 몇 번이고 나의 고해를 밝히기 위해 피를 흘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야뇨증은 난봉꾼 아버지가 반신불수가 된 후에야 완치됐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고 네 살 어린 동생에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주먹을 날렸던 나 역시도 아버지였다.
때때로 만취한 아버지가 이불을 적셨다. 그때마다 방구석으로 떠내려가 소용돌이치던 침묵의 처방전들.
세계의 부도덕이 출생과 가난함과 연약함에 있다면 로힝야족과 캐러밴과 보트피플과 같은 슬픈 이역은 누가 죽어야 나을 수 있는 야뇨증일까.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비트켄슈타인의 지구에서. 나는 또 누구의 야뇨증이어야 할까.
거위의 비대해진 간이 가공식품이 될 때까지의 잔혹이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혁명을 빈 공터에서 부는 휘파람 속에 담아두었다.
우리를 뛰어넘어 단 한 번의 비행을 위해 들판을 내달리는 거위를.
어느 숲속의 나무 아래 거위의 눈처럼 잠들어 꺼억, 꺼억, 봄의 푸른 잎사귀 한 장으로 자라나는 풍경을.
머리 위로 장엄하게 날아가는 거위 떼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철없는 아이들의 운동회를.
나는 내가 없는 곳에서 살아가겠다.
월간 『현대시』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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