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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수빈 시인 / 여보게 웃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14.

박수빈 시인 / 여보게 웃게

 

 

          왜 옆으로가 앞으로인가

          여보게 웃게

           

          어디나 갈 수 있고 어디도 갈 수 없어

          죽어서도 우리는 표류자

          비린내를 전파하지

           

          밥상이어서 거룩하다

          누군가 살점을 먼저 집어간다

          집게발은 가위처럼 위험하고

          잡으려면 미끄러지는 감정

           

          마른 혀가 구차할수록 거품을 문다

          타인의 살은 왜 이리 맛있나

          김씨를 씹고 박부장을 씹고 나도 씹히며

          너도 나도 오도오독(誤讀誤讀)

           

          발설하지 못하는 공복이 빠드득

          여보게 웃게

           

          찰진 결핍이 달빛을 머금고

          조금과 사리를 오가는 속내도 있다

          은밀한 부위에 닿자 소름이 돋는다

           

          애간장은 그믐의 점괘

          뼛속 깊이 발라지는 사랑

          엎드려 울기에 단단한 등을 지녔다

           

          씹다 뱉어낸 바닥에 형체 잃는 사지들

          치부를 본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박수빈 시인 / 오드아이

 

 

          맹인가수의 오래된 노래를 듣는다

          두 눈을 왼편과 오른쪽으로 나눈다

          옳다 그르다 빛과 그림자

           

           

          불같던 시절

          어느새 희끗해진 머리카락

           

          서로 다른 두 색이 아파왔다

           

          옳은 것이 그르기도 하고

          구별하는 순간 한쪽 눈은 빛을 잃고

           

          경계는 어떻게 사라지고 미끄러지는가

           

          편을 가르는 눈빛이나 말은 아침이 밝아도 나무

          녹음이 울울창창해도 헐벗은 밤

           

          잎이 흔들리고 이상한 바람이 가슴을 휘젓는다

          산으로 가는 배처럼 당신과 나

           

          스멀거리는 것은 차라리 축복일까

          두물머리처럼 만나는

          사랑을 끌고 다닌 날들

          저스트 콜 투 세이 아이 러브 유

           

          * 오드아이 : 홍채 이색증

 

계간 『리토피아』 2018년 겨울호 발표

 


 

박수빈 시인 / 무화과

 

 

          주홍글,씨들을 먹는다

          무슨 죄가 이리 둥글까

          비가 오지 않는 생이 더 달달해졌나

          죄의 씨앗으로 잉태된 것이 아니라

          새를 어루만진 몸이 가려워

          휘파람에 열매는 꽃을 품고

          날 선 말들의 속죄양 주홍글,씨

          뱀의 혀들이 담을 넘는다

          언어의 발기부전

          끈적한 저 핏빛

 

계간 『리토피아』 2018년 겨울호 발표

 


 

박수빈 시인

광주에서 출생, 시집 『달콤한 독』(다층, 2004)으로 작품활동 시작.  2013년 《열린 시학》 평론 등단, 저서로는 시집 『달콤한 독』과 『청동울음』, 평론집『스프링 시학』, 『다양성의 시』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상명대 강사, wing28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