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수 시인 / 고독이 온다
시시포스가 온다 쓰발쓰발이 온다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5층으로
올리고 올리고 걸어 내려가 다시 들어 올려야 하는 아랫입술을 깨문 무게 택배가 온다
오늘의 기온은 저를 초과하고 아무리 걸어도 최소한의 발걸음 자신의 미궁을 향해 세 번도 더 아니오, 뱉아내는 비명
뭉개진 눈코입이 온다 온몸이 뒤틀려서 온다 계단만으로 되어있는 길 무릎을 굽히며 막고 있다가도 한번은 터져나오고야마는 불립문자
쓰발 한 다발이 온다 낡은 현관문 틈새를 벌리며 뾰족한 날숨이 내 귓구멍을 뚫으며 가담한 죄를 찾아야할 듯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손 내밀어 차마 받을 수 없는 두 손으로
밤보다 더 밤 같은 한여름 한낮이 온다 멎을 듯이 그대로 곧 멎어버릴 듯이 그러나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청청한 고독이 온다
계간 『다층』 2018년 겨울호 발표
한영수 시인 / 유르트
돌 같은 것은 던지지 말자 양에게도 풀에게도 무릎을 꿇었다
그때 우리가 봄이었을 때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세운 집 두 가슴과 그곳이 있었다
지붕 가운데는 뚫어 구름의 양털을 섞었던가 광장과 밀실이 넘나들었다 양들이 일없이 풀 뜯는 냄새를 풍기면 그러면 하루의 아침이 왔다
나는 일어나 감자와 당근을 채 썰어 만두를 빚었다. 네가 한 끼분의 흰 젖을 두 손에 받아오는 동안 여름 다음에 오는 겨울은 생각하지 않았다
서른 개의 이름으로 구름을 부르는 곳 달리고 구르다가 짧게 기쁘고 눈물 긴 이야기는 바위에 그렸을라나
사글세 이만 원이었다 하나, 둘, 셋을 세고 나서 기차를 탔다
다리가 모자란 곤충이었을 때 그때 우리가 두리번거리는 틈새였을 때 무엇이 되지는 말자. 하루에 한 번은 꼭 어두워졌다 바람은 사방에서 불고 최선을 다해 바람을 오독하던 집
계간 『다층』 2018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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