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백선 시인 / 빙산
겨우내 난독증에 걸려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했다
결국 무수한 소문들만 더 양산했다 불면이 똬리 틀 때,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아 늘 개를 안고 다니는 이웃집 여자처럼 혼자 중얼거리다가 웃곤 한다
어둠 한가운데서 회갈색빛 심상이 빛난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불안과 위선이 조금씩 떨어져나가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원점이 보인다 암울한 어둠의 각질들이 하얗게 쌓여 실체를 덮을 때까지 밤의 등을 떠밀었다 나목은 침묵과 더불어 냉각을 굳혔다
절벽 위에 거대한 타인의 봄이 세워졌다.
반년간 『참나문학』 2018년 상반기호 발표
성백선 시인 / 안개주의보
분명,
멀리 오지 않았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육안엔 온통 희미한 알갱이로 가득하다 누가 분사해놓은 습기일까 오리무중, 순간이 전체를 덮치는 순간이다 충돌이 다가오기 전야의 바람
차갑다 손을 뻗치면 수천의 다른 손이 잡아당기고 발을 내딛으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틀어진다
내가 나에게 단호하게 소리친다 무섭지 않아 ㅡ
눈을 부릅뜨자 조난당한 사람들의 흰 무덤이 보인다 돌아가야 할 집이 있으니 어깨 위에 잠시 등불을 얹고
주저앉고 싶을 땐 말을 아끼면서 안개에 젖는다 축축한 입김에 휘말린 모함들이 일그러지도록 귀를 어루만지다 보면 희뿌연 내막이 걷힌다 묵묵히 두드리고 싶은 문에 대하여 정리를 마치고 도착할 벽난로 불빛이 그려지면 그때 첫 발을 내밀어도 늦지 않다
안개 속을 걷는 법엔 기다림이 빛이다.
반년간 『다시올문학』 2018년 하반기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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