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시인 / 타일 속의 점묘
영역은 직선으로 베이고 곡선은 사방 격자무늬에 갇혔다 태초에 곡선을 낳은 게 자신의 본성이라며 직선은 손나발을 불고 다녔다
날것이었던 풍경들이 백시멘트를 뒤집어쓴 채 모노톤(monotone)으로 물들어가고 곡선의 대지에 우뚝 선 타일공은 여전히 눈썹에 손차양을 하고 있다
초콜릿 단물 한 번 빨지 못하고 카카오 숲에서 땅거미로 스러지는 건 검은 대륙을 달리던 부족의 후예, 무고 뿐 직선의 수호자들이 식량을 실은 객차에 더 큰 총소리로 신호기를 단다
땅에 묻지 못한 코끼리의 튜브에 개미들이 달라붙는다 반듯한 국경선을 어지러이 넘나드는 까만 점들의 행선지가 수상스러운데, 누군가의 입장을 헤아리는 건 비효율적인 생각의 낭비 A에서 Z를 향해 곧장 날아가는 저 진격의 총알 그 직선에 온몸이 관통되는 말 못하는 무고의 비애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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