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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미영 시인 / 타일 속의 점묘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7.

이미영 시인 / 타일 속의 점묘

 

 

        영역은 직선으로 베이고

        곡선은 사방 격자무늬에 갇혔다

        태초에 곡선을 낳은 게 자신의 본성이라며

        직선은 손나발을 불고 다녔다

         

        날것이었던 풍경들이 백시멘트를 뒤집어쓴 채

        모노톤(monotone)으로 물들어가고

        곡선의 대지에 우뚝 선 타일공은

        여전히 눈썹에 손차양을 하고 있다

         

        초콜릿 단물 한 번 빨지 못하고

        카카오 숲에서 땅거미로 스러지는 건

        검은 대륙을 달리던 부족의 후예, 무고 뿐

        직선의 수호자들이 식량을 실은 객차에

        더 큰 총소리로 신호기를 단다

         

        땅에 묻지 못한 코끼리의 튜브에

        개미들이 달라붙는다

        반듯한 국경선을 어지러이 넘나드는

        까만 점들의 행선지가 수상스러운데,

        누군가의 입장을 헤아리는 건 비효율적인 생각의 낭비

        A에서 Z를 향해 곧장 날아가는 저 진격의 총알

        그 직선에 온몸이 관통되는

        말 못하는 무고의 비애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이미영 시인

서울에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2019년 제8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등단.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