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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라라 시인 / 성장기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7.

최라라 시인 / 성장기

 

 

그 방죽을 넘던 아이들의 절반은 결국 도시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동네에서 나가려면 방죽을 넘어야했다. 방죽에 올라 선 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 뒤돌아보는 순간이 있었다. 그 때 그들의 눈은 이상하게 반짝였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냉동식육을 배달하는 한 녀석은 한 달에 두어 번 도시를 거쳐 다닌다. 여하튼 그는 도시의 벽을 넘은 셈이다. 제법 똑똑하던 한 녀석은 서울에서 지방 방송국으로 좌천됨으로써 결국 꿈꾸던 도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한 녀석은 몇 번의 가출 끝에 돌아와 다시 그 방죽 위를 넘나든다. 제 아버지의 경운기를 몰고, 지금도 그 방죽의 꼭대기에서 한 번은 멈출 수밖에 없는데 이유는 기어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란다. 그렇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뒤돌아보는 습관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도시의 입성에 성공했다고 소문난 몇몇은 한 번도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는 변함없이 밭에 거름을 지고 나르거나 마을 공판장에서 10원짜리 화투를 치다 멱살을 잡곤 한다.

 

방죽에 얽힌 아이들의 몇 가지 나쁜 추억은, 그 밑에서 잦은 수음의 저녁을 보내거나, 아버지 담배를 훔쳐온 녀석들이 처음으로 담배 맛을 보곤 하던 일이다. 방죽을 떠나면서 어떤 녀석은 방죽이 없어서 시작할 수 없는 몇 가지 일에 대해 아쉬워했다.

 

방죽은 그들이 올라 선 곳이 아니라 그들을 가려 준 곳이었다. 큰 마을에서 치킨 배달 일을 하는 녀석은 방죽이 없는 동네는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보험설계사로 있던 녀석은 방죽이 없어서 도시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고 실실 웃으며 말하곤 했다.

 

방죽에 남은 몇몇 녀석만 지금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가을이면 40인승 버스를 대절해 동네 어른들과 단풍놀이를 간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도시로 떠난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낸다. 동기회 알림,

 

그리고 그 녀석들은 이제 방죽위에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최라라  시인

1969년 경주에서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1년 《시인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천년의시작, 2017)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