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라라 시인 / 성장기
그 방죽을 넘던 아이들의 절반은 결국 도시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동네에서 나가려면 방죽을 넘어야했다. 방죽에 올라 선 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 뒤돌아보는 순간이 있었다. 그 때 그들의 눈은 이상하게 반짝였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냉동식육을 배달하는 한 녀석은 한 달에 두어 번 도시를 거쳐 다닌다. 여하튼 그는 도시의 벽을 넘은 셈이다. 제법 똑똑하던 한 녀석은 서울에서 지방 방송국으로 좌천됨으로써 결국 꿈꾸던 도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한 녀석은 몇 번의 가출 끝에 돌아와 다시 그 방죽 위를 넘나든다. 제 아버지의 경운기를 몰고, 지금도 그 방죽의 꼭대기에서 한 번은 멈출 수밖에 없는데 이유는 기어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란다. 그렇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뒤돌아보는 습관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도시의 입성에 성공했다고 소문난 몇몇은 한 번도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는 변함없이 밭에 거름을 지고 나르거나 마을 공판장에서 10원짜리 화투를 치다 멱살을 잡곤 한다.
방죽에 얽힌 아이들의 몇 가지 나쁜 추억은, 그 밑에서 잦은 수음의 저녁을 보내거나, 아버지 담배를 훔쳐온 녀석들이 처음으로 담배 맛을 보곤 하던 일이다. 방죽을 떠나면서 어떤 녀석은 방죽이 없어서 시작할 수 없는 몇 가지 일에 대해 아쉬워했다.
방죽은 그들이 올라 선 곳이 아니라 그들을 가려 준 곳이었다. 큰 마을에서 치킨 배달 일을 하는 녀석은 방죽이 없는 동네는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보험설계사로 있던 녀석은 방죽이 없어서 도시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고 실실 웃으며 말하곤 했다.
방죽에 남은 몇몇 녀석만 지금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가을이면 40인승 버스를 대절해 동네 어른들과 단풍놀이를 간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도시로 떠난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낸다. 동기회 알림,
그리고 그 녀석들은 이제 방죽위에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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