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시인 / 양촌리
오늘도 늦은 저녁입니다.
요양병원 어머니를 퇴소시켜 목욕 잠자리 봐 드리고 하루 종일 목줄 매여 시달린 강아지 산책 시킨 뒤
이제야 무거운 엉덩이를 풀어 놓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하루.
우렁쌈장 우겨넣어 허기를 달래며 모처럼 양촌리쌀막걸리 한 모금에 마른 목을 축이면 잠에 쏠려 미개 눈뚜껑 주저앉을 판.
그래도 제 술 한 잔 받으셔야죠! 아부하듯 떠오르는 시상(詩想)에 옷매무새 고쳐 앉는 저녁.
시심을 수놓은 좀생이별들 흰 백지 위에 맘껏 쏟아져 내립니다.
떠오르는 시상은 황송할 뿐인데 무거운 피로에 떨어뜨린 볼펜 굴러가다가 멈춰선 책상다리 저 쪽 그늘 짙은 거기
당신이 서 있습니다.
원고지 밖에서 당신이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밤이 거기 있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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