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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도연 시인 / 양촌리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8.

김도연 시인 / 양촌리

 

 

오늘도 늦은 저녁입니다.

 

요양병원 어머니를 퇴소시켜 목욕

잠자리 봐 드리고

하루 종일 목줄 매여 시달린 강아지 산책 시킨 뒤

 

이제야

무거운 엉덩이를 풀어 놓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하루.

 

우렁쌈장 우겨넣어

허기를 달래며

모처럼 양촌리쌀막걸리 한 모금에 마른 목을 축이면

잠에 쏠려 미개 눈뚜껑

주저앉을 판.

 

그래도 제 술 한 잔 받으셔야죠!

아부하듯 떠오르는 시상(詩想)에 옷매무새 고쳐 앉는

저녁.

 

시심을 수놓은 좀생이별들 흰 백지 위에 맘껏

쏟아져 내립니다.

 

떠오르는 시상은 황송할 뿐인데 무거운 피로에

떨어뜨린

볼펜 굴러가다가 멈춰선 책상다리 저 쪽

그늘 짙은 거기

 

당신이 서 있습니다.

 

원고지 밖에서 당신이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밤이 거기 있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김도연 시인

1968년 충남 연기에서 출생. 2012년 《시사사》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엄마를 베꼈다』(시인동네, 2017)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