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원 시인 / 등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아니 위에서, 아래에서 어느 쪽으로 돌다가 등이 되었나 손으로 스스로 안을 수 없는 등이여 안쪽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바깥쪽이 되었나
마른 등 넓은 등, 굽은 등 꼿꼿한 등 등골마다 새겨져 있는 자신들의 이력을 이야기 한다 등 푸른 싱싱한 날이 있었던가 병석의 나날로 차갑게 굳어가던 날도 있었다
돌아서는 수많은 순간들 등을 진다는 말이 제일 무서운 말이다 돌아서지도 못하고 무거운 등을 지고 살아야했던 아버지 따뜻했던 등이 가족들 중 가장 먼저 굳어갔다
그곳에 기대어 앉아 귀 기울이면 휘어진 뼈 사이를 바람이 어루만지고 달빛이 스며드는 소리가 들렸다 숨결이 잦아져 구불덩 구불덩 거릴 때 내 숨을 가만히 넣어본다 아버지 등에 기대 보랏빛 잠이 얼굴로 와르르 쏟아지던 유년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이제는 아버지가 내 등에 얼굴을 대고 환한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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