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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명원 시인 / 등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8.

한명원 시인 / 등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아니 위에서, 아래에서

        어느 쪽으로 돌다가 등이 되었나

        손으로 스스로 안을 수 없는 등이여

        안쪽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바깥쪽이 되었나

         

        마른 등 넓은 등, 굽은 등 꼿꼿한 등

        등골마다 새겨져 있는 자신들의 이력을 이야기 한다

        등 푸른 싱싱한 날이 있었던가

        병석의 나날로 차갑게 굳어가던 날도 있었다

         

        돌아서는 수많은 순간들

        등을 진다는 말이 제일 무서운 말이다

        돌아서지도 못하고

        무거운 등을 지고 살아야했던 아버지

        따뜻했던 등이 가족들 중 가장 먼저 굳어갔다

         

        그곳에 기대어 앉아 귀 기울이면

        휘어진 뼈 사이를 바람이 어루만지고

        달빛이 스며드는 소리가 들렸다

        숨결이 잦아져 구불덩 구불덩 거릴 때

        내 숨을 가만히 넣어본다

        아버지 등에 기대

        보랏빛 잠이 얼굴로 와르르 쏟아지던

        유년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이제는 아버지가 내 등에 얼굴을 대고

        환한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한명원 시인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 석사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