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덕 시인 / 안목의 사색
안목, 이라고 소리 내 읽는 순간 줄자, 라는 말로 바뀌어 들려온다.
도처에 대상들은 눈여겨보는 넓이다.
안목은 자벌레처럼 눈금의 범위를 기어간다. 가다가 멈출 때마다 요소요소가 된다. 추정으로 정해놓은 지레잠작미터의 눈금은 비교적 정확하다. 안목의 자는 나날이 싱싱하여 절대의 후계를 자처한다.
창문 틈으로 어두운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 이론도 없이 인간의 목소리 둘레를 쟀다가 시치미로 지운 흔적이 있다. 오전의 측정은 속이 좁고 오후의 측정은 둘레가 넓다, 로 변동법이 적용된다. 마치 투시력의 초능력 필적 같아 보이는, 저 멀리 한나절 무지개가 서려있는 구름을 끌어내려 넓이를 재기도 한다. 초의미의 센티미터가 적용되는 무지개는 지상의 눈금을 향해 있고 무수한 가닥의 빗줄기는 지상까지 길이를 재느라 늘어난다.
하지만 저 안목도 돌돌 말릴 때가 있듯 지레짐작도 동그랗게 돌돌돌 말린다.
사방이 줄자가 처 놓은 넓이와 깊이들을 피할 수가 없다. 그 안에 꼼짝없이 갇힌 운동장과 들판의 건축법은 이미 낯익은 풍경이다.
오류가 줄자 위에 내려앉은 오후 새가 날아오르는 소리를 따라 넓이와 깊이를 잰 이력만 늘어간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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