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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백겸 시인 / 카발라(kaballah)의 생명나무 환상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9.

김백겸 시인 / 카발라(kaballah)의 생명나무 환상

 

 

무한인 아인소프Ein-sof로부터 세상의 왕관 케테르Kether로 빛이 흘러넘치고

케테르가 충만해지자 지혜 호흐마Chokmah로 빛이 흘러넘치고

호흐마가 충만해지자 이해 비나Binah로 빛이 흘러넘치고

비나가 충만해지자 자비 헤세드Chesed로 빛이 흘러넘치고

헤세드가 충만해지자 심판 게부라Geburah로 빛이 흘러넘치고

게부라가 충만해지자 아름다운 조화인 티페레트Tipereth로 빛이 흘러넘치고

티페레트가 충만해지자 승리인 네자흐Nitzach로 빛이 흘러넘치고

네자흐가 충만해지자 영광인 호드Hod로 빛이 흘러넘치고

호드가 충만해지자 기초인 에소드Isod로 빛이 흘러넘치고

에소드가 충만해지자 물질의 왕국인 말쿠트Malcuth로 빛이 흘러넘치는 생명나무*인 은하계의 에덴 지구에

 

나는 암흑질서의 명령으로 환생한 시인

높이와 넓이의 한계가 없는 생명나무 음악이 옥타브가 다른 무지개빛 음계音階로 나에게 왔을 때

나는 언어의 죽음과 부활을 위해 태어난 시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지은 칼리kali 여신이 말했다

쇠가 황금이 되어야 하는 사명을 잊은- 늙은 아이야

네 현재는 영혼을 황금으로 바꾸는 기술-‘금속의 결혼’에 대한 기쁨이 빠져있다

육체가 죽어야 하는 - 네 운명의 청동거울을 황금으로 도금하렴

 

칼리kali여신이 생명나무 환상이 있는 시의 에덴- 장미원薔薇園에 내 정신을 초대했다

생명나무의 나뭇잎이 고귀한 손으로 변했고 여신의 얼굴을 한 불멸의 정신에 내가 키스를 했다

희열과 공포의 마약기운이 있는 키스가 전생과 후생의 모든 내 존재 기억을 불러왔다

내 몸의 피부가 나무껍질로 변하면서 생명나무의 지혜와 감정이 수액처럼 스며들었다

내 안의 나무가 이파리 만 개를 피우고 새벽과 황혼과 빛과 어둠을 물감처럼 섞었다

풀벌레 소리가 차가운 음악으로 변해 바위아래 샘물로 흘렀다

나무기운이 은빛 갈기를 뿜는 사자처럼 내 심장에서 빛을 뿜는 꿈의 숲

나는 인간의 기억을 검은 새처럼 날려 보내고 시간 이전과 시간 이후의 존재 나무들이 첩첩산중인 시의 에덴에서 불사의 나무를 꿈꾸었다

칼리(kali) 여신이 내 연인인 이상한 관계의 환상 속에서 눈을 뜨니 현실이 숲의 그림자처럼 얇아지면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카발라kaballah: 헤브라이어로 ‘전승(傳承)’을 뜻하는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

 

계간 『시와 정신』 2018년 겨울호 발표

 

 


 

김백겸 시인

1953년 대전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 『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 『기호의 고고학』, 『거울아, 거울아』와 시론집  시론집 『시적 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光源)』 등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主幹 역임. 현재 〈시힘〉, 〈화요문학〉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