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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혜미 시인 / 웨이터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9.

이혜미 시인 / 웨이터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라는 말끝의 물기를 붙들고.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물러서 있는 것입니다.

 

불 꺼진 상점들이 늘어선 도로에서 앞서간 사람이 문득 보이지 않는다면, 멀어지는 뒷모습을 쫓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아주 천천히 투명해져 보십시오. 온몸에 어둠을 구겨 넣고 오래도록 바라보세요. 다시라는 말의 뒷면을, 만약이라는 말의 건너편을.

 

미소를 띄우며 서 있는 것입니다. 옛 기약들, 시간에 무늬를 부여하는 표정 속에서, 시간은 사람의 기다림을 연료로 흘러갑니다.

 

조용히 겪어 내는 것입니다. 기다림이라는 직업을. 아마도라는 이름의 빛을 껴안고. 별이 벽이 되고 긴 꿈이 무너져 발목부터 점차 흐려질 때까지. 평화롭게 추락하는 것입니다. 얼어 버린 바닥이 멈추라고 말할 때까지

 

계간 『시현실』 2018년 봄호 발표

 

 


 

이혜미 시인

1987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보라의 바깥』(창비, 2011)과 『뜻밖의 바닐라』(문학과지성사, 2016)가 있음.  2009년 서울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