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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혜천 시인 / 폐허에서 오는 봄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9.

김혜천 시인 / 폐허에서 오는 봄

 

 

        위태로운 발상은 젊음의 다이빙

        그림자를 보는 건 내공을 보는 일이다

         

        지상의 발 부친 것들은 중력을 이겨낼 수 없어

        어깨가 안으로 굽듯

        낡아가는 것에는 지친 영혼이 깃들어 잇다

         

        이쪽과 저쪽을 버티는 벽을 허무는 일은

        살아 있을 때의 일이다

         

        고염나무가 나선으로 뻗어

        허물어져 가는 벽을 받치고 있다

        그 아래를 지나가는 검정개의 충혈된 눈

         

        속삭임도 없이 찾아와

        뒷덜미를 물어뜯는 삶과 죽음의 경계

         

        모든 대지는 육탈된 몸의 잔해다

        우리가 밟고 선 자리가 죽은 자의 무덤 아닌가

         

        그래서 역사와 자연은 하나다

        너와 나는 폐허에서 도래한 봄이다

         

        봄은 하늘에서가 아니라

        폐허 속에서 온다

 

계간 『포엠포엠』 2018년 여름호 발표

 


 

김혜천 시인

서울에서 출생. 2015년 월간 《시문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윤동주서시문학상 제전위원.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