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영산 시인 / 그녀의 몸은 폭격을 맞은 듯 당당했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3.

김영산 시인 / 그녀의 몸은 폭격을 맞은 듯 당당했다

 

 

그녀의 젊은 몸은 폭격을 맞은 듯 당당했다.

그러니 알몸인들, 그녀는 맞서지 않는가?

 

인생, 전쟁 총알이 박히고 폭격을 맞고

지옥의 환한 수술실에, 혀끝에 피를 묻히고, 웃고 떠들고, 의사들이 칼질을 해대도

누군들, 지구상에 없는, 전쟁이 없는

시를 쓰랴? 그녀가 스스로 깁고 또 기우는,

시인인 것이 다행이지만 그녀가 대지의 시인으로, 폐허보다 높은 건물은 없다.

 

스스로 알기까지, 여덟 번의 대수술이 대지의 폐허를 증거한다.

아아 도대체 누가 총알이 뚫고 지나간 폐에서 나는 쌕쌕거리는 소리에 운을 맞출 수 있겠는가?*

 

그녀의 땅은 목줄기부터, 배꼽 아래까지

종횡무진, 좌우로 금이 가 있다.

 

그런데 그녀는 폭격을 맞은 듯 당당했다, 누가

당당히 걸어가 대지의 건물이 될 것인가? 누가

장님이 되어 그녀를 바라본다면, 한 줄기 미를 더듬거릴지 모른다.

 

* 보르헤르트(W. Borchert)의 소설 『5월에, 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에서 인용.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8년 가을호 발표

 


 

김영산 시인

1964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 중앙대 문창과 졸업. 1990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동지(冬至)〉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평일』(시와시학사, 2000)과 『벽화』(창작과비평, 2004), 『하얀 별』(문학과지성사, 2013)이 있음.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하해 시인 / 황사 외 3편  (0) 2019.04.03
박서영 시인 / 입김  (0) 2019.04.03
김경숙 시인 / 길을 채우다  (0) 2019.04.03
이강 시인 / 공기들  (0) 2019.04.02
성금숙 시인 / 바이러스  (0) 2019.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