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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강 시인 / 공기들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2.

이강 시인 / 공기들

 

 

집주인이 환한 방안의 불빛을 두드렸다. 공기 만 가득찬 방이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집주인은 꾸러미에서 누런 열쇠를 고른다. 열쇠를 구멍에 집어넣어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쪽방에서 노인이 웅크리고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앉은뱅이 상 위에 있는 병에 물이 절반 고여 있었다. 아침 햇살에 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집주인은 쪼그려 앉아 고개 숙인 노인을 보았다.

 

노인의 움직임이 고요해질 때 병 속 물은 울음을 참고 있었으리라.

천장에 매달려 있던 먼지가 수면에 떨어질 때 울컥, 컵 벽을 흔들어 보았으리라.

 

죽음이 완성된 저 창백한 조각상. 그림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멈춰버린 노인을 햇살이 품어주고 있었다. 그때 작은 창에서 먼지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이강 시인

1971년 강원도 횡성에서 출생. 2018년 《시현실》 신인상을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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