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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선 시인 / 도도 죽이기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3.

정선 시인 / 도도 죽이기

 

 

        도도는 그늘 속에서 자랐다

        도도는 광배근이 불끈거렸다

        어쩌면 도도는

        긍휼의 다른 애인이었다

        곧추세우는 등뼈였다

        자존의 연금술사였다

         

        이것은 22세기 금속성 절규에 관한 보고서다

         

        도도는 입꼬리 하나로 사람들을 조종할 줄 알았다

        턱은 언제나 오후 2시 방향으로 들려 있었는데

        그들은 턱 아래에서 웃다가 울고

        때로는 두려움에 떨었다

        덕분에 부자가 된 도도는

        팔각기둥으로 성을 짓고

        바쁜 중에도 팔각호수를 즐거이 바라보았다

         

        미녀들의 마놀로 블라닉 같은 위험이 오히려 도도를 지켜주었다

        도도를 숭배하는 이들은 빨랐고

        발상을 죽이는 생각들이 넘쳐났다

        도도가 사랑하는 이들은 너무도 멀리 있었다

        사랑은 지루했고 속도는 고단했다

        속도에 치여 음악이 죽어갈 즈음

        도도는 속도를 버렸다

        순전한 음악이 죽으면

        머잖아 미소가 죽고

        입들만 살아 둥둥 하늘을 뒤덮을 것이었다

         

        도도는 25시 속으로 떠났다

        호숫가 나무에 긴 꼬리를 걸어놓고서

        25시는

        환한 절규가 태양을 업고 달려오는 시간

        제 것들이 형체를 잃어 흩어지는 고비

        절규는 25시에서 바오밥나무로 자라나고

         

        도도가 오뚝 앉았던 의자에 앉아 본다

        머스크향이 난다

        도도가 좋아했던 애플을 한입 깨문다

        와작,

        도도가 부서진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2월호 발표

 


 

정선 시인

전남 함평에서출생. 전남대 국문학과 졸업. 2006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천년의시작, 2010)와 에세이집 『내 몸 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