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세복 시인 / 우로보로스*
지난 밤 꽃뱀이 그림을 그렸네요. 이를테면 압착화 같은 거죠 열흘 붉은 꽃 없다는데 이 꽃은 그보다 훨씬 빨리 사라질 듯하네요.
속력과 폭력이 앞 다투는 아스팔트 위에서 압착의 자세를 기리는 이 딱히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꽃잎이 아니라 단풍잎일지 몰라요. 가을은 뭍것들이 마지막 피를 토하는 계절, 억새풀 따위에 갈아온 칼날 같은 혓바닥이 어둠 속에서 번쩍! 한 번은 빛을 발했을 테니까요.
그러나 약자에게 독기란 겨우 제 살 도려내는 것일 뿐, 제 안으로 살기를 품어버리는 힘일 뿐, 머리 터진 꽃뱀은 마지막으로 제 몸을 돌아봤겠죠.
육체는 습속처럼 꿈틀거리고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은 채 꼬리로 입을 막아 울음을 가두었겠죠.
욱여넣듯이, 그가 다음 생을 꿈꾸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몸뚱아리가 전부인 것들이 또아리 트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 꼬리를 삼키는 자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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