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희 시인 / 묵은 수수께끼를 풀듯
물이 불에게 말하는 사이에 꽃이 피었다 물도 불도 모르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꽃이 피었다
그 꽃은 불인 듯 타올랐지만 그 때마다 물의 말로 중얼거렸다
꽃이 화상을 입지 않는 비결은 물과 불 사이의 거리를 알고 자신을 그 거리의 색으로 기꺼이 물들이는 것이다
불이 물에게 말하는 사이에 꽃이 졌다 물과 불 사이의 팽팽했던 거리가 그 긴장감이, 한순간 한 송이로 뚝, 떨어졌다 흙이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공의 공기는 더욱 가벼워지고 불이 물에게, 물이 불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을 드디어 묵은 수수께끼를 풀듯 흙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격월간 『시사사』 2018년 7~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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