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영 시인 / 벽의 근황(近況)
벽 속에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판화로 찍어놓은 듯 조금 전 창밖의 풍경 같습니다. 계절을 누가 통째 옮겼을까요.
나뭇가지에 잎도 붙이고 뿌리도 그려봅니다. 불타는 열매를 식히려 물도 뿌려봅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벽을 뚫고 나온 새 내 앞에 툭 떨어졌습니다. 파닥이는 체온을 나무 아래 묻으면 무슨 맛이 날까요.
빨간 맛이란 혀가 착각하는 걸까요 머릿속 실핏줄이 집중하는 걸까요
아삭, 당신의 어제가 도착하는 소리입니다. 사과를 가슴으로 품고 당신이라는 나무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인공위성처럼
벽 속으로 뻗었던 풍경 속 아침 인사는 아름다운 궤도를 이탈 중입니다.
멀리 사라지는 소실점같이 나는 당신의 안부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당신은 안으로 벽을 쌓고 나는 당신의 바깥을 허물고
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식탁 위 사과를 집어 들고 입 맞추었습니다.
입술이 사각거립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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