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에즈라기 – 느헤미야기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히브리 성경에서 한 권으로 묶여 있었던 책입니다. 그러다가 불가타 성경에서부터 둘로 구분하였고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도 이를 따라 둘로 분리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둘이 한 권으로 묶여 있었을 만큼 두 권의 책은 동시대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BC 539년경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재건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올바른 삶의 자세를 고취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50여 년간의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묶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유배를 떠났던 것이 아니라서 유배를 겪는 동안 가나안 땅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고, 그 땅을 차지한 다른 사람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또한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이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침략으로 인해 멸망함에 따라 더이상 그들에게는 임금도 없었으므로 하나의 공동체를 위한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한 것은 성전과 율법을 통한 공동체의 재건이었습니다.
에즈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전반부인 1-6장은 유배자들의 귀환과 성전의 건립 및 봉헌을 다루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려보내 예루살렘에 하느님의 집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BC 538년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바빌론으로 끌고 갔던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를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위한 성전 건축을 시작하지만, 사마리아 주민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에는 어려움이 뒤따랐고, 결국 중지되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 그리고 즈루빠벨, 예수아의 노력으로 성전 건축이 재개되었습니다. 그리고 BC 519년, 키루스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관련하여 내렸던 칙령이 발견됨에 따라 페르시아의 3번째 임금이었던 다리우스 임금은 성전을 완공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다리우스 임금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초 사흗날에 성전 건축을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BC515년 과월절에 하느님께 성전을 봉헌한 뒤,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유배 기간 동안 팔레스티나 지방에 머물면서 이민족들과의 관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이들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와 다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냅니다. 이날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자신들과 백성 전체에게 정결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로써 유배에서 돌아온 유배자들은 하느님의 거처를 새롭게 마련하고 전례를 회복했으며, 백성 전체의 정화를 이루어냄으로써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외적인 면모를 완전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에즈라기 후반부인 7-10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에즈라가 등장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내적 쇄신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에즈라는 주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규정과 법을 가르치라는 공적 임무를 임금으로부터 부여받은 사제이며 율법학자였습니다(에즈 7,10 참조).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내적 쇄신으로 두 가지를 이야기하였는데, 먼저 첫 번째는 율법(토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에즈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토라)를 가르치면서 올바르게 이를 해석해주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통해 새롭게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이방인과 혼인을 금지하는 조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를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지만 그 땅은 이미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그 땅을 되찾고자 그들과 혼인을 시도하였습니다. 에즈라는 이러한 태도를 지적하며 이방 여자와 혼인한 사람들에게 아내와 자식을 내보내게끔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솔로몬 임금이 정략적인 목적으로 이방 여자들과 혼인을 함에 따라 그들의 종교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생겨났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즈라는 새롭게 공동체를 재건함에 있어서 혈족으로도 그리고 신앙으로도 순수하고 거룩한 사람들로 이를 이룩하고자 율법(토라)에 대한 가르침과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지시켰던 것입니다.
느헤미야기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먼저 1-7장은 느헤미야의 회고록에 해당하는 것으로, 페르시아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치하에서 고위 관리로 봉직하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복구를 위해서 임금에게 간청한 끝에 유다 지방 장관으로 임명을 받아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공동체를 재정비했던 과정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8장부터 10장까지는 에즈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자 에즈라는 공동체의 실질적인 법률과 규칙에 해당하는 율법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즈라와 함께 초막절 축제를 지내고, 장엄하게 계약을 갱신하여 “하느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걷기로”(느헤 10,30) 맹세하였습니다. 마지막 3번째 부분인 11-13장은 예루살렘 주민들에 대한 보도와 예루살렘 성벽 봉헌 그리고 느헤미야의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통치 32년에 바빌론으로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의 몫이 분배되고 있지 않았던 문제와 안식일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들을 바로 잡은 뒤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지시키면서 개혁 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 특히 이방인과의 혼인 문제에 대해서는 에즈라보다 느헤미야가 더 단호하였습니다. 에즈라의 경우 유다 남자와 결혼한 이방 여자와 자녀들을 추방하였지만 느헤미야는 유다 여자와 결혼한 이방 남자들까지 추방시켰습니다.
이처럼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근본을 마련하는데 집중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 건립, 예루살렘 성벽 복구, 모세의 율법 재반포 등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더이상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이 왕정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모세의 율법을 다시금 선포하고 이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던 것은 율법을 단순한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기 위한 생존과 관련한 법으로 이를 규정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바탕 아래에서 유다이즘이 태동하게 됩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1년 1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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