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으며 제1독서 (미카 5,1-4ㄱ), 제2독서 (히브 10,5-10), 복음 (루카 1,39-45) 가톨릭신문 2021-12-19 [제3274호, 15면]
세상 축복하는 사랑의 징표로 아기 예수님 보내주신 하느님 매 순간 살아가는 은혜의 시간 주님께 화답하며 영혼 가꾸길
어제 흐린 하늘에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이런 날엔 어쩐지 어릴 적 꿈을 꾸곤 하는데요. 겨울방학의 추억이 깃든 꿈에는 찬바람에 떨던 문풍지 소리가 들립니다.
따뜻한 아랫목에 손을 녹이던 정경을 만나고 꽁꽁 언 빨래가 널린 마당에서 찬바람을 맞던 까치밥의 선명한 색을 봅니다. 그런 날은 따뜻한 추억으로 마음이 추슬러져서 생기를 되찾는 느낌이 드는 데요.
오늘의 여백을 충실히 채울 힘을 공급받은 기분입니다.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한 기억이야말로 매일 동동거리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에 짧은 쉼을 선물하는 마음 정거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주일, 분홍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하면서 문득 분홍색은 “사랑의 말을 발음하는 당신의 혀”라고 표현했던 시인의 글귀가 떠올라서 무지 행복했는데요. 오늘도 대림 제4주일을 맞아서 밝혀진 하얀 초의 색깔과 사제가 입은 맑디맑은 흰색 제의에서 품어져 나오는 언어가 깊고 투명하여, 고스란히 신자들에게 전해지는 은혜를 청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기다림에 마침표가 찍히는 오늘이기에 그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교회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막바지,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설렘을 선물합니다. 잠든 세상이 보지 못하는 별을 보기 위해서 영혼이 깨어있기를 권하고 우리를 참 행복으로 이끌어줄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기다리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아드님의 희생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뜻이 참으로 가혹하여 마음이 쓰려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이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으로 떠나는 아들 예수를 바라보시며 ‘내 탓이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라며 목멘 심정을 토로하셨을 것만 같은 겁니다.
오늘 제2독서는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치열한 사랑을 계획하신 하느님과 예수님의 이별 장면을 소개하는데요. 저는 감히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라고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시던 예수님의 음성이 떨렸을 것이라 헤아립니다. 해서 마음이 저릿해집니다. 새삼 우리에게 선물 된 구원의 은혜가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의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으레 성당에 구유를 꾸미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올해만큼은 제발 동물의 먹이통인 구유가 아니라 찬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하고 아늑한 방, 믿음으로 가득한 마음, 희망으로 환한 영혼, 사랑이 충만한 삶의 현장에서 기쁘게 태어나고 싶으실 것이라 싶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곳에서 태어나 고작 구유에 누여지는 걸 보시며 하느님께서는 억장이 무너졌을 것만 같은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또다시, 당신 홀로 창조하신 세상을 우리와 더불어 가꾸시려는 강력한 의지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무조건, 축복하시는 가장 큰 사랑의 징표로써 아기 예수님을 보내주십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후다닥 지나치는 우리의 매일이지만 매양 그렇고 그런 일상이 반복되는 도돌이표는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은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은혜의 시간인 까닭입니다. 어제와 똑같은 일상일지라도 사실 우리가 맞이하는 매 순간순간은 전혀 새로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임을 명심한다면 지난날, 지난 시간보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마주하는 상황에서 안달복달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기준과 다르다고 판단하며 스스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을 삼갈 것입니다. 하여 두루 보듬어 품어 내는 사랑의 삶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과의 만남을 목전에 둔 지금, 삶의 호흡을 가다듬고 시선을 돌려 주님과의 거리를 좁히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나’의 근원을 아는 지혜인답게 삶의 핵심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스스로의 신앙을 재발견하고 스스로가 살아낸 삶의 경험을 재해석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길에 저마다의 곡절과 사연을 절절히 풀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시작이시며 마침이신 주님께 안기어서 펑펑 울음보가 터지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참회의 마음이야말로 주님께서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니까요. 주님께로 돌아서 다짐하는 새로운 결의야말로 오시는 그분의 길을 환히 밝혀 드리는 세상의 화답이니까요.
주님께서는 결코 엉성한 믿음의 뿌리로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의 최선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동안 요만큼 자라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다 아십니다. 이 작은 사랑을 살아내기 위해서 또 얼마나 애를 쓰고 용을 썼는지, 환히 알고 계십니다. 때문에 앙상하기만 한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비웃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저, 오로지, 가여워서 토닥여주십니다. 오히려 “애썼다. 고맙다.” 위로해 주십니다.
이제 이 주간의 말미, 쇠약해져서 보잘것없는 우리 인생을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인생으로 바꿔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십니다. 우리 모두를 ‘보잘 것 있는’ 하늘의 존재로 탄생시키기 위해서 세상에 또다시 하느님의 아들이 오십니다.
하느님의 이 놀라운 사랑에 화답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정갈히 가꾸는 저와 여러분이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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