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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4주일-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

by 파스칼바이런 2021. 12. 20.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4주일-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12.19 발행 [1642호]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 ‘아인 카렘’이라는 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아담하고 소박한 시골 마을로, 그곳에는 ‘성모 방문 기념’ 성당이 있습니다. 거기 마당에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모습을 묘사한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배가 불러있는 두 산모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 동상 뒤쪽으로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적어놓은 ‘주님의 기도문’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엔 그것들이 그저 기념 혹은 장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믿음’이라는 주제를 더욱 분명히 부각하기 위한 배치였던 듯합니다. 마리아의 믿음이 당신 자신과 인류 전체를 구원과 참된 행복으로 이끈 원동력이었음을 기억하며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마리아가 원래부터 굳건한 믿음을 타고 태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아직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열다섯 살 소녀가 그런 강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을 리가 없지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자신이 처녀의 몸으로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고지를 받은 마리아는 엘리사벳 이모를 찾아갑니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100㎞가 넘는 산길을 걷는 동안 마음이 너무나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어리고 약한 자신이 세상의 구원이라는 중대한 소명을 잘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여 낳기까지 닥쳐올 위험과 어려움들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이 걸어갈 십자가의 길을 부족하고 약한 자신이 끝까지 함께 잘 걸어갈 수 있을지 막막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선배이자 신앙의 선배인 엘리사벳 이모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녀라면 이해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버거운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 그 길을 알려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그런 마리아를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떠올리며 마리아가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고 살아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고하고 생각이 짧았던 자신은 사내아이를 잉태하리라는 하느님의 뜻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자신은 육체적인 문제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인데, 심지어 나이까지 많은데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그런 그녀의 인간적인 나약함과 불신마저 극복하시고 끝내 당신의 뜻을 이루셨고, 그 일을 통해 엘리사벳은 주님의 말씀이란 결국 이루어지게 되어있으니 그분의 뜻을 믿고 따르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깨닫습니다. 그 신앙의 ‘정수’를 마리아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마리아가 세상 모든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 이유는 신랑을 잘 만나서도, 가진 게 많거나 미모가 뛰어나서도, 자식이 성공해서도 아닙니다. 그런 세상의 기준들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며 ‘난 참 박복한 사람’이라 여겼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릴 기회를 놓쳤겠지요.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선택했기에 인간적인 약함과 부족함에 제한되지 않는 완전하고 충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박복한 사람입니까? 박복하다면 그 이유는 ‘행복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걸 믿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성탄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됨”을 기뻐하고 경축하는 시기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우리의 구원과 참된 행복을 바라시는 그분의 뜻이 우리가 살아갈 ‘현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