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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주하 시인 / 홍어탕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30.

박주하 시인 / 홍어탕

 

 

열흘 곪은 잇몸을 모시고

치과에 가던 날

이쪽저쪽 부푼 농을 헤집고 터트려

입안 가득 고인 피를 뱉는 순간

사는 게 참 고단하다 싶었다

고작 잇몸 하나 허물어졌을 뿐인데

세상 풍파에 시달린 심장 냄새를 맡다니

어디 허름한 홍어집 구석에 앉아서

잘 삭은 애탕 한 그릇 먹고 싶단 생각이

얼얼하고도 간절했다

누구 돌아볼 심사도 버리고

밥 한 덩이 말아 넣고

천천히 홍어 애를 으깨고 싶었다

이빨도 잇몸도 필요 없는 물컹한 것

후후, 불어 넘기면서

무르고 헐거워진 몸뚱어리

혼자 뜨겁게 달래보고 싶었다

 

ㅡ『문학청춘』 2022년 겨울호

 

 


 

박주하 시인

1967년 경남 합천에서 출생.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항생제를 먹은 오후』와 『숨은 연못』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가 있음. 2006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