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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경철 시인 / 천 개의 고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30.

김경철 시인 / 천 개의 고원

 

 

심장에 닿기 위해 내 안의 말은

사방팔방 몇십 리, 몇천 킬로미터라도

상관없다는 듯 내달려간다 히말라야

산하에서 내려다본 무수한 하천 너머

푸른 대지를 녹이는 한낮의 햇살처럼

작고 따사로운 풀잎에게 눈인사하는

내 안의 말은, 산양의 피를 마시는 저

저녁의 목책까지 훌쩍 뛰어넘어 간다

동음이의어로 가득한 일상의 목울음까지

내 안의 말은 새롭게 되새김질한다

산과 바다를 향해 절벽이 끌어안는

포말까지, 버티고 서서 우는 내 안의 말은

잠시 말울음으로 흩어진 갈매기 떼를

정렬시키고 다시 비상한다 내 안의 말은

심장 너머를 본다 천 개의 고원, 천 개의

하천이 모이는 이 바다에서 내 안의 말은

말갈기로 이글거리는 태양을 본다

내 안의 고동이 저기 저 천 개의 고원까지

둥둥둥 울려 퍼지는 뱃고동으로 전해진다

하루를 천년처럼 충전하는 하루살이처럼

내 안의 말은 잠깐 동안 반짝인다, 눈빛을

 

 


 

 

김경철 시인 / 내 안의 마적 떼

 

 

돌풍이 부는 날에 내 전신을 타고 오르는 소용돌이 떼가 있다

 

음악은 대평원이다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달리다 지친 말 한 마리를 보고 싶다

 

격한 새벽안개가 콧김에서 뿜어져 나온다

 

뒷다리로 긁는 저 푸른 먼지들이 산란하는 꿈

 

한 마리 파리가 말처럼 뛰어갈까

 

스키타이를 건너

 

황하를 건너

 

마력: 1초 동안에 건장한 한 사내를1미터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마적 떼는 크로키만으로 그려질 수 있다.심장의 평원을 요동치게 하는 말발굽에는 먼지와 바람의 마적 떼가 숨어 산다.

 

질주하는 말들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마력.질서를 혼란케 하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열광과 연대.마력은 순식간에 마적 떼를 만들어낸다.내 안의 마적 떼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연대와 열광.

 

허공중에 입자와 파동을 이끌어내는 음악이란 마적 떼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고요와 침묵을 거부하는 한차례 움직임은 나를 가르는 마적 떼.

 

먼지와 바람의 마적 떼가 한차례 지나갔다.

지상의 풍랑과 하늘의 벼락이 한차례 지나갔다.

 

 


 

김경철 시인

1974년 인천 부평에서 출생. 원광대학교 농학과 졸업.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석사 졸업.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 2005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등단. 시집 <이리떼 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