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하 시인 / 홍어탕
열흘 곪은 잇몸을 모시고 치과에 가던 날 이쪽저쪽 부푼 농을 헤집고 터트려 입안 가득 고인 피를 뱉는 순간 사는 게 참 고단하다 싶었다 고작 잇몸 하나 허물어졌을 뿐인데 세상 풍파에 시달린 심장 냄새를 맡다니 어디 허름한 홍어집 구석에 앉아서 잘 삭은 애탕 한 그릇 먹고 싶단 생각이 얼얼하고도 간절했다 누구 돌아볼 심사도 버리고 밥 한 덩이 말아 넣고 천천히 홍어 애를 으깨고 싶었다 이빨도 잇몸도 필요 없는 물컹한 것 후후, 불어 넘기면서 무르고 헐거워진 몸뚱어리 혼자 뜨겁게 달래보고 싶었다
ㅡ『문학청춘』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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