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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희 시인(여주) / 낮은음자리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

김진희 시인(여주) / 낮은음자리표

 

 

마른 젖꼭지를 단 어미개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저 마른 젖꼭지

한때는 탱탱하게 불어 거침없이 흔들거렸으리라

먹여 살려라 어미여

자식을 위해 버텨주어라

큰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낮게 낮게 속울음만 삼키던 울음

젖을 채우려 허겁지겁

목구멍으로 우겨넣었던 생계

이제는 까맣게 말라버린 젖꼭지로

바닥을 향하고 있다

신이 되지 못해서

죽는 날까지 용서를 빌어야하는 어미의 생

자식 가진 어미는 끝내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다

 

-시집 『상처에 대응하는 방식』 2015. 문학의전당

 

 


 

 

김진희 시인(여주) / 건초

 

 

어제는 늦가을을 지나왔다

사람이 그리운 날의 허기처럼

안개가 마른 가지를 둘둘 말고 있다

소식을 어디다 떨구고 갔는지

새는 엽서 한 장 보내지 않는다

마른 몸으로 견디는 일만 남아 있다

허물로 다시 돌아온 생은

긴 명(命) 자랑하지 않는다

 

-시집 <상처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김진희 시인(여주)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2011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상처에 대응하는 방식』이 있음. 현재 <풀밭> 동인과 심상문학회 회원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