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시인 / 독작 獨酌
두 홉짜리 소주병을 땄다 병과 잔 사이는 한 치가 못 되었다 그 사이에 삼라만상의 근심이 깊었다 주섬거리지 않고 탁, 털어 넣었다 안주는 오래 물색하였다 달이 떴고 밤새 소리도 펼쳐 있었다 강물의 물비늘 두어 장을 쭉 찢었다 질겅거렸다 두 홉짜리 소주병이 비었다 강물의 수위가 한 치쯤 낮아져 있었다 노을에서 시작하였으나 어느덧 여명이었다 내내 독작이었다
문신 시인 /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공단 지대를 경유해 온 시내버스 천장에서 눈시울빛 전등이 켜지는 저녁이다 손바닥마다 어스름으로 물든 사람들의 고개가 비스듬해지는 저녁이다
다시,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저녁에 듣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기에는 너무 피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나씩의 빈 정류장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내버스 뒤쪽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을 저녁이라고 부른 들 죄가 될리 없는 저녁이
누가 아파도 단단히 아플 것만 같은 저녁을 보라 저녁에 아픈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기 좋은 저녁이다
시내버스 어딘가에서 훅, 울음이 터진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저녁이다
이 버스가 막다른 곳에서 돌아 나오지 못해도 좋을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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