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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순자 시인 / 소라 가옥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3.

권순자 시인 / 소라 가옥

 

 

소라껍데기 주렁주렁

수천 개 집을 지었다네

 

소라의 집을 찾아드는 쭈꾸미

아름다운 빈집을 누가 마다하리

 

지옥으로 가는 길인 줄 모르고

시커먼 길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용감한

의심 없이 몸을 디미는 선량한 몸짓 보소

 

파도도 묵인하는 상한 길

참담한 눈빛이 소라 저 깊은 가슴 속에 흔들리고 있을까

삶의 무게가 중력만큼이나 끈적하다

 

혼자 살 집을 구하느라 이리저리 헤매다가

고독한 생의 모퉁이에서 잠시 한눈팔다가

아름다운 빈집 하나 발견하고는

냄새 맡고 재빨리 입주하네

 

돌아나갈 길 없는 일방통행로,

소라의 집 입주

집을 점거하는 순간

치사량의 행복이 소라 가옥에 맴도네

 

가눌 길 없는 무거운 손아귀

쭈꾸미의 발이 묶여 끝내 무덤이 될

아름다운 집

 

몽산포에는 쭈꾸미의 블랙홀

소라 가옥이 있다네

 

 


 

권순자(權順慈) 시인

경주에서 출생. 1986년《포항문학》에 「사루비아」외 2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3년 《심상》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우목횟집』 『검은 늪』 『낭만적인 악수』 『붉은 꽃에 대한 명상』 『순례자』 『천개의 눈물』 『청춘 고래』 『소년과 뱀과 소녀를』 등이 있고, 시선집 『애인이 기다리는 저녁』 『Mother's Dawn』(『검은 늪』의 영역시집)이 있음. 수필집 『사랑해요 고등어 씨』가 있음.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