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시인 / 해를 먹은 새
죄를 따먹은 새 눈이 밝아진 새가 잉글잉글 불붙어 노래 부르네
태초에 남녀가 금기의 과실을 따먹듯 절정의 순간을 탐하는 화덕에서부터 일어난 지진은 손끝 발끝까지 감전感電 하더니
여진餘震으로 찌르르 찌르르 오장육부 오대양 육대주로 희열이 넘쳐 넘실거리며 흐물흐물 풀어지더니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같은 영화음악으로 온누리 구석구석 파고드는 뿌리로 굽이치는 물결로 머물다가 흘러내리더니
불을 사랑하는 물과 물을 애무하는 불이 어울려 지글지글 끓어제끼는 화덕 삼매경........
그 사랑의 궁전에는 불과 물이 불꽃이 되어 군불을 지피는 인체우주人體宇宙 수억만 세포들 폭약이 되어 폭죽을 터뜨리며 노래 부르네
황송문 시인 / 자운영紫雲英
나는 그녀에게 꽃시계를 채워 주었고 그녀는 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꿀벌들은 환상의 소리 잉잉거리며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만남은 이별, 보자기로 구름 잡는 꿈길이었다
세월이 가고 늙음이 왔다
어느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도 동그라미밖에 더 그릴 수가 없다
이제는 자운영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풍문조차 들을 수가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추억 속에 살아 있는 그녀의 미소, 눈빛과 입술이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바쳤고 그녀는 나에게 詩를 잉태해 주었다
황송문 시인 / 달
가시내야, 가시내야, 시골 가시내야. 루즈의 동그라미로 빌딩을 모르는 가시내야. 날 짝사랑했다는 가시내야. 달 돋는 밤이면 남 몰래 고개 하나 넘어 와서는 불켜진 죽창문 건너보며 한숨 쉬던 가시내야. 날 어쩌라고 요염한 입술로 살아 와서는 도시都市의 석벽石壁을 올라와 보느냐.
가시내야, 가시내야, 시골 가시내야. 저만치 혼자서 참연한 눈빛으로 승천昇天하는 가시내야. 너의 깊은 속 샘물 줄기 돌돌거리는 잠샛별 회포 쌓인 이야기를 일찌 감치 들려주지 못하고 어찌하여 멀리 떠서 눈짓만 하느냐. 어느 이승 골짜기에 우연히 마주칠 때 날라온 찻잔에 넌즈시 떨구고 간 사연 갖고 날 어쩌란 말이냐.
가시내야, 가시내야, 시골 가시내야. 저 달을 물동이에 이고 와서는, 정화수 남실 남실 달빛 가득 뒤안의 장독대 바람소리 축수 축수 치성을 드리던 어미 죽은 줄도 모르고, 루즈의 동그라미만 붉게 붉게 불이 붙는 가시내야. 날 어쩌라고 저만치 참여한 눈빛, 볼그레한 연지볼로 웃기만 하느냐.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윤정 시인(부산) / 탈 외 2편 (0) | 2023.05.04 |
---|---|
문숙 시인 / 집착 외 2편 (0) | 2023.05.03 |
권순자 시인 / 소라 가옥 (0) | 2023.05.03 |
김조민 시인 / 잘못 놓인 보도블록처럼 (0) | 2023.05.03 |
김종숙 시인(화순) / 물빛 같은 숨결로만 (0) | 2023.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