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 시인(부산) / 탈
세월의 흔적인가 거뭇하게 떠오르는 잡티며 주름이며 퍼석한 얼굴이 거울 속에서 빤히 보고 있다
화운데이션, 마스카라, 루즈 재빠른 손동작으로 채색되어지고 새롭게 태어난다
벽에 걸린 하회탈이 웃으며 묻는다 너, 변장한 거 맞지?
자신을 호도하기 위한 겉치레 그럴듯한 거짓말을 덮어쓰고서 모두들 변장하고 살지 탈 하나쯤 갖고 살지
그래, 너도 탈 나도 탈이다
-이화옥 시집 ‘산수유, 꽃등을 켜다’중에서-
이윤정 시인(부산) / 사랑, 뿌리가 되는 일
산을 견디게 하는 힘은 세월과 함께 땅속 깊이 뻗어 내린 나무뿌리이다
한 때는 작고 여려 풀처럼 흔들리며 설움에 젖었던 폭풍우의 밤도 있었으리라
숲 속 나무들 사이에서 간절한 목마름으로 딱딱한 바위를 에돌며 아프도록 뿌리내린 사랑이여 핏줄이 된 사랑이여
땅 속에서 스스로 넘쳐 밖으로 굽이쳐 뻗어 내렸다 햇살을 받아 하얀 뼈처럼 빛난다 이제는 바람에 뽑히지도 누군가 떼어 낼 수도 없다
각질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질긴 섬유질만 남은 큰 나무 뿌리를 계단 삼아 걸으며 나약한 내 마음의 뿌리가 아프게 흔들리고 있다
이윤정 시인(부산) / 풀(草)의 노래
숨이 죽고 시든 풀들은 더 시든 풀들의 어깨를 다독이고 비에 젖어 절망에 젖은 풀들은 더 젖은 풀들의 눈물을 닦는다
바위도 구름도 바람도 아니다 풀만이 풀을 일으킨다
가슴 속 불안의 파도가 시시때때로 넘실대다 쌓아온 탑들을 부수며 휘청거리는 오후의 그림자가 두 눈에 아른거릴 때
그리웁다 흔들려서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지는 너의 어깨 그 따스한 체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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