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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윤정 시인(부산) / 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4.

이윤정 시인(부산) / 탈

 

 

세월의 흔적인가

거뭇하게 떠오르는 잡티며

주름이며 퍼석한 얼굴이

거울 속에서

빤히 보고 있다

 

화운데이션, 마스카라, 루즈

재빠른 손동작으로

채색되어지고 새롭게 태어난다

 

벽에 걸린 하회탈이 웃으며 묻는다

너,

변장한 거 맞지?

 

자신을 호도하기 위한 겉치레

그럴듯한 거짓말을 덮어쓰고서

모두들 변장하고 살지

탈 하나쯤 갖고 살지

 

그래, 너도 탈

나도 탈이다

 

-이화옥 시집 ‘산수유, 꽃등을 켜다’중에서-

 

 


 

 

이윤정 시인(부산) / 사랑, 뿌리가 되는 일

 

 

산을 견디게 하는 힘은

세월과 함께

땅속 깊이 뻗어 내린 나무뿌리이다

 

한 때는 작고 여려

풀처럼 흔들리며 설움에 젖었던

폭풍우의 밤도 있었으리라

 

숲 속 나무들 사이에서

간절한 목마름으로

딱딱한 바위를 에돌며

아프도록 뿌리내린 사랑이여

핏줄이 된 사랑이여

 

땅 속에서 스스로 넘쳐

밖으로 굽이쳐 뻗어 내렸다

햇살을 받아 하얀 뼈처럼 빛난다

이제는 바람에 뽑히지도

누군가 떼어 낼 수도 없다

 

각질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질긴 섬유질만 남은

큰 나무 뿌리를 계단 삼아 걸으며

나약한 내 마음의 뿌리가

아프게 흔들리고 있다

 

 


 

 

이윤정 시인(부산) / 풀(草)의 노래

 

 

숨이 죽고

시든 풀들은

더 시든 풀들의 어깨를 다독이고

비에 젖어

절망에 젖은 풀들은

더 젖은 풀들의 눈물을 닦는다

 

바위도

구름도 바람도 아니다

풀만이 풀을 일으킨다

 

가슴 속 불안의 파도가

시시때때로 넘실대다

쌓아온 탑들을 부수며

휘청거리는 오후의 그림자가

두 눈에 아른거릴 때

 

그리웁다

흔들려서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지는

너의 어깨

그 따스한 체온이

 

 


 

이윤정 시인(부산)

본명: 이화옥. 수필가. 시낭송가. 2005년 <신문예> 시 등단. 2008년 <문학세계>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부산문인협회 이사(역임). 부산시인협회 이사. 부산가산문학협회 회장. 불교문인협회 사무국장(역임). 문예시대 작가상, 실상문학상 봉사상, 강변문학상 대상. 시집 <산수유, 꽃등을 켜다>, <소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