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 시인 / 집착
그물망 속에 든 양파
서로 맞닿은 부분이 짓물러 있다
간격을 무시한 탓이다
속이 무른 것일수록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을
상처란 때로 외로움을 참지 못해 생긴다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상해서 냄새를 피운다
누군가를 늘 가슴에 붙이고 사는 일
자신을 부패시키는 일이다
문숙 시인 / 밥상을 차리며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 가서 축하 반 부러움 반을 섞어 박수 치다가 상 복 없는 시인들끼리 서로서로 시 좋다고 칭찬하다가 문학상은 못 받아도 밥상은 받고 산다는 한 시인 농담에 웃어 주다가 밥상이 문학상보다는 수천 배는 값진 것이라고 맞장구치다가 밥은 없고 술만 있는 자리에서 헛배만 채우다가 집에 와서 식구들의 밥상 차린다 일생 가장 많이 한 일이 나 아닌 너를 위해 밥상 차린 일임을 생각하다가 오나가나 들러리밖에 안 되는 신세에 물음을 가져 보다가 훌륭한 걸 따지자면 상 받는 일보다 상 차리는 일이라 생각하다가 그래도 한 번쯤 상이든 밥상이든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가 이런 마음이 내가 나를 들러리로 만드는 것이라 반성하다가 이번 생은 그냥 보험만 들다가 가겠구나 생각하다가 밤새도록 나를 쥐었다 놓았다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문숙 시인 / 단추
장롱 밑에 떨어진 단추 어둠에 갇혀 먼지더미에 푹 파묻혀 있다 어느 가슴팍에서 떨어져 나온 것일까
한 사람을 만나 뿌리 깊게 매달렸던 시절을 생각한다 따스하게 앞섶을 여며주며 반짝거리던 날들
춥고 긴 골목을 돌아 나오며 한 사람의 생애가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채우다, 끝내 서로를 동여맨 실이 풀려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단추
세상 밖으로만 구르다 먼지를 무덤처럼 뒤집어쓴 채 잊혀진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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