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 / 잘못 놓인 보도블록처럼
내가 뒤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었다고 두고 온 침묵이 생각났다고 부풀어 오른 어둠이 등을 떠밀었다고 단지 혼잣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발끝에 걸린 보도블록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실수로 잘못 놓인 사각형은 자신의 모서리 하나를 허공에 놓고 있었다 연속성을 잃은 어제와 오늘처럼 예측할 수 없는 다음이어서 오히려 간절한 기도였다 어쩌면 나는 갑작스런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돌아갈 수 있으리라 갈래의 길 앞에서 오랫동안 말라가던 그날은 순간과 순간 사이에서 뿌리내린 그림자였다 덩굴이었다 밧줄이었다 무엇이든 낚아채는 다짐이었다 그때의 내가 차라리 잘못 놓인 보도블록처럼 현현한 울음이었다면 설명되어지는 이전과 이후가 있었을까 내가 뒤돌아봤을 때 솟아난 기척은 너무 은밀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숙 시인 / 집착 외 2편 (0) | 2023.05.03 |
---|---|
황송문 시인 / 해를 먹은 새 외 2편 (0) | 2023.05.03 |
권순자 시인 / 소라 가옥 (0) | 2023.05.03 |
김종숙 시인(화순) / 물빛 같은 숨결로만 (0) | 2023.05.03 |
조현석 시인 / 물방울석 외 2편 (0) | 2023.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