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숙 시인 / 위
날개를 수저처럼 사용하는 새들 활강하는 것들로 배를 채우는 저 투명한 위에는 가끔 날아가는 풍경이 보인다
흔들리는 잎눈 먼지의 시야 움직이는 것들로 배를 불린다
지상으로부터 새어 나온 연기가 빨려 들어가는 곳 흩어지는 소화법을 갖고 있어 굴뚝의 끝을 좋아하는 식성이다
무거운 것들은 모두 아래에 주고 가벼운 것들만 편식하는 공활(空豁)한 위(胃)
간혹 굉음의 혈관이 생겨나고 때론 천천히 움직이는 무늬를 소화하는 저 위의 표정엔 폭발하는 불꽃이 있다
눈발은 위에서 하품으로 녹아내리는 역류다
소각로도 없이 지구 어느 강변에선 몇 구 죽음이 흩어졌다 그럴 때면 허공엔 기류 따라 태풍의 눈이 생기기도 하고 천둥의 날개를 보이기도 한다 내려앉지 못하는 날개는 굉음의 식욕을 갖고 있다
폭염으로 붉게 타는 위 어두워지면 활엽수림이 일제히 움직이고 별은 위의 기호적 식욕이라는 듯 광년(光年)을 지나면서 서서히 녹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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