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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은숙 시인 / 위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4.

안은숙 시인 / 위

 

 

날개를 수저처럼 사용하는 새들

활강하는 것들로 배를 채우는 저 투명한 위에는

가끔 날아가는 풍경이 보인다

 

흔들리는 잎눈

먼지의 시야

움직이는 것들로 배를 불린다

 

지상으로부터 새어 나온 연기가 빨려 들어가는 곳

흩어지는 소화법을 갖고 있어

굴뚝의 끝을 좋아하는 식성이다

 

무거운 것들은 모두 아래에 주고

가벼운 것들만 편식하는 공활(空豁)한 위(胃)

 

간혹 굉음의 혈관이 생겨나고

때론 천천히 움직이는 무늬를 소화하는

저 위의 표정엔

폭발하는 불꽃이 있다

 

눈발은 위에서 하품으로 녹아내리는 역류다

 

소각로도 없이 지구 어느 강변에선 몇 구

죽음이 흩어졌다

그럴 때면 허공엔

기류 따라 태풍의 눈이 생기기도 하고

천둥의 날개를 보이기도 한다

내려앉지 못하는 날개는 굉음의 식욕을 갖고 있다

 

폭염으로 붉게 타는 위

어두워지면 활엽수림이 일제히 움직이고

별은 위의 기호적 식욕이라는 듯

광년(光年)을 지나면서 서서히 녹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안은숙 시인

서울에서 출생. 건국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석사 졸업. 201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2017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수필 당선. 시집으로 『지나간 월요일쯤의 날씨입니다』와 동주문학상 수상시집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가 있음. 2017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 문학 분야 선정 작가. 제1회 시산맥 시문학상, 제7회 동주문학상 수상. 공저 『언어의 시, 시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