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 시인 / 봄의 기지개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 없다가 설 명절도 다 끝나 찾아온 외갓집 사돈네 일가붙이마냥 두꺼비 개구리 땅속 흙을 헤집고 어섯눈 뜨듯, 볕 좋은 날 골라 밭에다가 비닐이며 쓰레기 주워 태우는 소골양반이 냉갈 피워 올리는 자리 옆에서 어정쩡 오줌을 싸고 있다 미동 사는 김수옥 씨 세상살이 가정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낮술이라도 한잔 걸쳐 자셨는지 물청 논에 지푸라기를 어거지로 끄집어내려다가 경운기 오도가도 못하게 꼬라박아놓고 내력 없는 헛삽질만 질탕 해대고 있다 아직 제비는 오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입춘도 한참 지나서 할 일 없어진 할망구 둘이 냉이나 찾겠다며 봉다리 하나씩 들고 띄엄띄엄 밭두둑이나 훑고 다닐 적에 버들개지 망울 돋아 오르는 경칩도 닷새쯤 남겨두고 벌어진 일 더는 미안해서 나 같이 못난 놈은 썩은 고구마 포대마냥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다
김명국 시인 /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
비가 내렸다가 금세 그치면 갓 캐온 햇마늘 냄새가 팍 풍겨오는 회를 바른 지 오래된 마당과 보리가 누레질 쯤 뒤란에 서둘러 익은 앵두나무 한 그루 있고
겨울이 오면 축사 지붕에 얹힌 눈이 걱정인 엉덩이에 마른 똥이 더덕더덕 달라붙은 주인을 닮은 소가 있다 새끼를 낳은 뒤에 껌벅이는 버릇이 더욱 잦아진 어미의 눈이 있다
먼 데 달을 보며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갑자기 물어봐서 택호는 잘 생각나지 않아 댈 수 없으나. 틀니를 끼운 이웃집 사투리 구수한 아짐 같은 토종개가 있고
빗자루병 걸린 키가 껑충 웃자라 볼썽사나운 대추나무와 연탄도 없던 시절 이야기지만 불 땐다고 곁가지를 조선낫 간짓대 묶은 연장으로 다 잘라가고 우듬지 주변만 조금 남은 빼빼 마른 소나무가 있다
그늘 밑 개구리를 잡아먹는다는 뱀이 자주 출몰하는 쥐똥나무와 탱자나무 울타리 안으로 기침이 잦은 병자(病者)하나가 올해 내년 하면서 날아가다 싸놓은 까치 물찌똥과 함께 페인트칠 벗겨진 대문간에 귀퉁이 닳아버린 문패처럼 걸려 남아 있는 곳
한뎃식구들과 낮밥을 먹으면서도 허공에다 자꾸 무언가를 쓰고 있는 논두렁에 풀 벨 낫이나 앉아 갈고 자빠져 있는 의심 많고 조심성 많은 수컷 고라니 같은, 아직 총각이라고 박박 우기는 이웃사촌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
-시집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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