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시인 / 자유형
탯줄을 끊고 처음 벌린 입은 음식이 필요했던 것일까 숨이 필요했던 것일까 오른팔과 왼팔이 엇갈려 물을 당긴다 입은 온전히 숨 쉬는 데 집중한다
곡기를 끊고 숨을 거둔 사람을 네 명 안다 세 명은 시인이고 다른 한 명은 시를 썼을 것이다 팔을 쭉 뻗고 책을 읽거나 비뚤거리는 서체로 글을 썼을지 모른다 아침 찬거리에 대해 헤엄치며 생겨났던 포말에 대해
아 오 우 아 모음들이 그의 입을 벌렸을 것이다 양치질 후에 몇 개의 발음을 가지고 산책을 했을 것이다 눈썹의 굵은 털처럼 걸음 옆으로 풀이 자랐을 것이다
수영은 아름답다 오른팔과 왼팔이 언니와 동생 같다 함께 엇갈리며 물을 당긴다 물은 밖으로 빠져나간 몸을 바로 잊는다
숲에도 장마가 시작되었다 산책로가 곧 덮일 것이다
김종훈 시인 / 흰 포말이 일어나는 맥주
7회가 끝난 뒤 덕아웃에 앉아 있는 카를로스 델가도 그 눈동자는 쳐다본다
야구장의 하늘은 원형 원형의 하늘에서 버블검 같은 구름이 흘러간다 나의 조국은 푸에르토리코 나의 학력은 중졸 나의 토요일은 원정경기
100년 동안 반복되는 야구 7회가 끝나면 운동장엔 God Bless America
한 줄기 빛이 담긴 밤을 지나 산맥에서부터 대초원까지, 흰 포말이 일어나는 바다까지 신이여 나의 집, 아늑한 집 조국에게 은총을 내 앞에는 전광판, 그리고 구름 아직 두 회가 남아 있고 우리들은 깨트릴 수 있을까 우리의 타구로 우리의 행동으로
관리인은 그라운드에서 땅을 고르고 베이스 라인을 다시 긋는다 두 회를 남겨 두고 관중들이 기립하여 노래를 부른다 맥주가 잠시 스탠드에 놓인다
공평한 이 땅에 우리 모두 감사하자 엄숙한 기도 중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같이 카를로스 델가도의 눈동자 실밥의 궤적과 구원투수의 구질을 감상한다 버블검을 씹으며 신이 내가 사랑하는 조국에게 은총을 내리는 동안
김종훈 시인 / 우리들의 옥상에는
아래층의 휴식과 아래층의 식사와 아래층의 싸움이 거름되어 텃밭의 상추는 잎을 펼친다
셔틀콕을 꺼내고 네트가 출렁이고 세트가 바뀌고 포물선을 그으며 우리들의 매치포인트 난간을 넘고
우리들의 싸움과 우리들의 식사와 우리들의 휴식을 지나쳐 흘러내린 셔틀콕을 찾아 아래로 향하는 동안
상추가 싹을 틔우고 석쇠가 달구어지고 삼겹살이 올라가고 텃밭의 상추를 따러 우리들은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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