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민 시인 / 구직求職
저물녘 안산 대로변 입간판이 부러진 철물점 귀퉁이에 아직 팔리지 않은 자재들이 쌓여있다
노을빛에 참아낸 눈물을 말리는 목재 더미 먼지 묵은 비닐 몇 장이 그의 유일한 이력서다 4 년의 공정 동안 여유를 자르고 낭만을 깎아 부단한 대패질로 다듬어놓은 외모와 품질도 까다로운 규격 앞에선 재고 신세일 뿐이다
이왕이면 얼굴과 몸을 더 깎아 날씬해지고 급료도 뚝 잘라서 열정을 보여 달라는 세상 정작 얇아진 부피는 각목으로도 쓰지 않고 가느다란 체형은 부적합 판정을 내리면서 소매상들은 애꿎은 나뭇결을 탓하는구나
톱밥 같은 일회용품만 매입해가는 시절 어느새 아름드리 고목은 철모르는 꿈이 되고 친구들은 일찌감치 합판으로 목표를 잡았다 외딴 공사판에 헐값도 못 받고 처분될 바에야 차라리 구청의 책상노릇이 상팔자란 이유였다
도로마다 줄지어선 자동차 후미등은 하릴없이 타들어가는 청춘들의 담뱃불 낙방의 서러움이 밤안개로 피어나는 날 쇠난간에 기대어 하루를 부려놓고 나면 노끈에 묶인 자존심이 치욕으로 갈라진다
멀리 불어온 찬바람에 대부업 전단지만 나뒹구는 오늘 거리의 젊음은 소주 같은 비에 젖고 싶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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