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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빛나 시인 / 방 탈출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5.

강빛나 시인 / 방 탈출

 

 

한탕하고 싶었을까, 폼나게

오늘을 살아본 적 없어서 탕진하기 좋은 밤처럼

 

너는 짐 빠져나간 배낭 같다

 

피로한 한숨이

앙상한 쇄골에 걸려 바둥거리고

어두워서, 저 혼자 용감해지는 암막 커튼 뒤에 숨어

코인 지수가 웅덩이에 풍덩 할 때마다

왼쪽 머리를 쥐어뜯는다

 

누구나 매혹당하는 동안에는 방 탈출은 쉽지 않아서

 

너에 대한 연민이랄까

피의 끌림이랄까

 

손을 내밀자

산 중턱을 넘어가는 목소리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한다

 

먼저 올라왔다고 길을 다 아는 건 아니어서

어쩌면 냉정한 사랑으로 대신 길을 걸어줄까도 생각하지만

내 피가 흐르다 멈추는 듯하다

 

심심해서,

희한한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과

능한 위장으로 기분 띄워주는 일이 많다는 변명의 금고는

열지 말아야 하는데

황금꼬리도 구차스러우면 쇠줄이 된다는 걸

 

언제고 놓았다는 너는, 놓지 못하는 애착

하나를 껴안고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강빛나 시인

2017년 《미네르바》로 등단. 단국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박사통합수료. 제2회 예천내성천문예공모 대상 수상. 현재 계간 『미네르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