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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국 시인 / 봄의 기지개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5.

김명국 시인 / 봄의 기지개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 없다가

설 명절도 다 끝나 찾아온

외갓집 사돈네 일가붙이마냥

두꺼비 개구리 땅속 흙을 헤집고 어섯눈 뜨듯,

볕 좋은 날 골라

밭에다가 비닐이며 쓰레기 주워 태우는 소골양반이

냉갈 피워 올리는 자리 옆에서 어정쩡

오줌을 싸고 있다

미동 사는 김수옥 씨

세상살이 가정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낮술이라도 한잔 걸쳐 자셨는지

물청 논에 지푸라기를 어거지로 끄집어내려다가

경운기 오도가도 못하게 꼬라박아놓고

내력 없는 헛삽질만 질탕 해대고 있다

아직 제비는 오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입춘도 한참 지나서

할 일 없어진 할망구 둘이

냉이나 찾겠다며 봉다리 하나씩 들고

띄엄띄엄 밭두둑이나 훑고 다닐 적에

버들개지 망울 돋아 오르는

경칩도 닷새쯤 남겨두고 벌어진 일

더는 미안해서 나 같이 못난 놈은

썩은 고구마 포대마냥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다

 

 


 

 

김명국 시인 /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

 

 

비가 내렸다가 금세 그치면

갓 캐온 햇마늘 냄새가 팍 풍겨오는

회를 바른 지 오래된 마당과 보리가 누레질 쯤

뒤란에 서둘러 익은 앵두나무 한 그루 있고

 

겨울이 오면 축사 지붕에 얹힌 눈이 걱정인

엉덩이에 마른 똥이 더덕더덕 달라붙은

주인을 닮은 소가 있다

새끼를 낳은 뒤에 껌벅이는 버릇이 더욱 잦아진

어미의 눈이 있다

 

먼 데 달을 보며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갑자기 물어봐서 택호는 잘 생각나지 않아 댈 수 없으나.

틀니를 끼운 이웃집 사투리 구수한 아짐 같은

토종개가 있고

 

빗자루병 걸린 키가 껑충 웃자라 볼썽사나운 대추나무와

연탄도 없던 시절 이야기지만

불 땐다고 곁가지를 조선낫 간짓대 묶은 연장으로 다 잘라가고

우듬지 주변만 조금 남은 빼빼 마른 소나무가 있다

 

그늘 밑 개구리를 잡아먹는다는 뱀이 자주 출몰하는

쥐똥나무와 탱자나무 울타리 안으로

기침이 잦은 병자(病者)하나가 올해 내년 하면서

날아가다 싸놓은 까치 물찌똥과 함께

페인트칠 벗겨진 대문간에 귀퉁이 닳아버린

문패처럼 걸려 남아 있는 곳

 

한뎃식구들과 낮밥을 먹으면서도

허공에다 자꾸 무언가를 쓰고 있는

논두렁에 풀 벨 낫이나 앉아 갈고 자빠져 있는

의심 많고 조심성 많은 수컷 고라니 같은,

아직 총각이라고 박박 우기는 이웃사촌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

 

-시집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 2021

 

 


 

김명국 시인

1972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 199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베트남 처갓집 방문』(실천문학사, 2014),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