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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다연 시인(천안) / 물든다는 것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7.

김다연 시인(천안) / 물든다는 것

 

천지사방

마음 가는대로 사는 이 얼마나 있다고

매순간 선택과 집중의 필요 속에서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물고

삶인 듯 아닌 듯 살아갈 수 있다면

꽃보다 붉은 빛 흐드러진 순간을 누군들 꿈꾸지 않으랴

단지 밥벌이에 겨웠다는 핑계를 대어서라도

그 붉은 빛에 더불어 물들지 못하고

하루하루 낯선 生을 감당하느라 분주했음을 자책해 보아도

환대란 의미를 잊은 지도 이미 오래라

물들지 못해 아쉬웠던 그 많은 순간을 단숨에 돌이켜 다시 물들 수야 없을 것을, 누구나 한순간만이라도

그렇게 마음 가는대로 물들 수만 있다면

먼 곳을 오래 바라본 적도 없는 것처럼

잘 익은 계절이 다하기 전

그 붉은 빛의 결따라 함께 붉어지고 싶었을 뿐

남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호사 이었을지언정

스스로에겐 뼈를 깎는 통증이었을 그 물들음에 대하여

참으로 친숙한 관계의 균열을 깨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김다연 시인(천안) / 상어

 

상어에게는

부레가 없다네요

다만 지방질의 아주 큰 간이 있어 물에 뜰 수는 있지만

삶의 치열함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으려면

잠자는 순간조차 사력을 다해 헤엄쳐야 한다구요

그 많은 날들 존재의 가치도 미약했던 삼억 년 전부터 이미

해저 심연의 가시와 불멸의 뼈마디까지 삼키면서

생존을 위한 혼란을 일으켜 먹이를 쟁취해야 했지만

한없이 뜨거워지거나 냉정해지면서

다른 생에서처럼, 별다른 진화도 없이

지구의 벽 하나를 넘나드는 시간을 견뎌 왔다구요.

아무려나 영원을 생략하는 일이 쉽지 않아

눈이 멀면 마음까지 멀어져 모든 것 문드러지겠지만

무한대에 가까운 이빨의 진화과정만은 빼 놓을 수 없었다구요

출렁, 바깥의 햇살을 향해 솟아오르려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버려야 할 것은 철저히 버리면서

여전히도 심장의 무게를 덜어내고 있다구요

모든 순간을 관장해온 목숨 너머

마음 먼저 오지 않고 몸이 먼저 오는 순간마저도

우레 같은 물거품 뿜어 왔다구요

 

오직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경계 좁혀 보려고 공기주머니도 없는 아가미만으로 그 세월 다 들이켰다구요

 

 


 

김다연 시인(천안)

충남 천안 북면에서 출생. 1997년 『조선문학』으로 등단 후 천안여류시동인회.천안문인협회 부지부장을 역임. 현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천안지사 근무중. 시집 <저 혼자 머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