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협 시인 / 벽을 찾아
얼어붙은 기쁨도 부서지는 것이다 타들어 가는 시간처럼 바람이 일고 진눈깨비가 한창이다 싸구려 연기로 얼어붙은 생을 녹일 수 있을까 낮술 한 사발로 잠들지 못해 문턱에 찰랑이다가 雨期의 숨죽인 애벌레처럼 쪼그라진 가슴은 문밖을 흘끔거린다 벽을 지나 또 다른 벽을 찾아 짓무른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물고개로 가는 길 문판소리가 눈꽃처럼 내린다
-《다시올문학》 2016년 봄
이현협 시인 / 고원의 배
사철 고드름을 단 몸뚱이는 겸허했다 험로의 관목을 지나 밀가루 같은 먼지에 콧속이 찢어지고 살갗이 탄다 종일 덩어리 소금을 깬 뿔이 멍들어갈 때, 마른 똥에 달아오른 밤은 헝클어진 기도보다 짧다 송곳 바람이 갈라진 발굽을 파고드는 소금사막, 앞질러 간 결빙이 짓무른 뿔을 깨웠다 흐물흐물해진 침묵의 길, 천상에 이름 없는 뼈마디가 웅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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