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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현협 시인 / 벽을 찾아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7.

이현협 시인 / 벽을 찾아

 

 

얼어붙은 기쁨도

부서지는 것이다

타들어 가는 시간처럼

바람이 일고 진눈깨비가 한창이다

싸구려 연기로 얼어붙은 생을 녹일 수 있을까

낮술 한 사발로 잠들지 못해 문턱에 찰랑이다가

雨期의 숨죽인 애벌레처럼 쪼그라진 가슴은 문밖을 흘끔거린다

벽을 지나 또 다른 벽을 찾아

짓무른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물고개로 가는 길

문판소리가 눈꽃처럼 내린다

 

-《다시올문학》 2016년 봄

 

 


 

 

이현협 시인 / 고원의 배

 

 

 사철 고드름을 단 몸뚱이는 겸허했다 험로의 관목을 지나 밀가루 같은 먼지에 콧속이 찢어지고 살갗이 탄다 종일 덩어리 소금을 깬 뿔이 멍들어갈 때, 마른 똥에 달아오른 밤은 헝클어진 기도보다 짧다 송곳 바람이 갈라진 발굽을 파고드는 소금사막, 앞질러 간 결빙이 짓무른 뿔을 깨웠다 흐물흐물해진 침묵의 길, 천상에 이름 없는 뼈마디가 웅혼하다

 

 


 

이현협 시인

경기도 포천 출생. 2004년 《시현실》, 2006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현재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사사 회원, 시산맥 회원. 한국시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