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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준연 시인 / 풍경과의 첫 대면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8.

김준연 시인 / 풍경과의 첫 대면

 

 

공간은 풍경의 길목을 차단한다

풍경은 넘어지고 흩어지고 휘발된다

 

나무는 나무에서 벗어난다

모자는 모자에서 벗어난다

고양이는 고양이에서 벗어난다

길은 길에서 벗어난다

 

벗어난 역은 무작위로 폐쇄된다

멈추지 않는 순환열차에서

언제 내릴지 결정해야 한다

 

씹히고

껌처럼 내뱉어진 풍경

 

풍경 이전의 풍경은 없고

풍경 이후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릴 역을 포착하는 유일한 통로는

창밖 풍경에 있다

 

풍경을 깨고

표정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풍경을 멈추고 풍경에서 내리려면

 

풍경에서 내려

풍경과 대면하려면

​-시집 『고양이를 입어야 한다』 2020. 시인동네

 

 


 

 

김준연 시인 / 물고기

 

 

 등불을 꺼버리자 대로 빛은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가까이 오면 포기하는 경우가 있어

 

 같은 색의 물고기는 없어요 더 작은 물고기가 있어요 목소리는 사라지고 이미 색들은 자신의 바닥을 보았어요

 

 돌의 복수를 한다고 돌이 되지 않아요 돌은 꺼진 등불일 뿐이에요 돌을 던지지 말아요 모든 노래가 되돌아와요 천 년 전에 끝난 빛을 아껴요 천천히 눈빛을 넘겨요 눈알을 파내지 말아요

 

 낯설어지길 기아려 표정을 꺼내요 어둠의 하체를 맞춰요 입구보다 창백한 출구를 고백하길 바라요 움켜쥔 모래를 놓아요 하나의 모래가 하나의 모래를 구할 때 길게 성이 쌓이고 체온이 오르고 있어요

 

 돌을 켜지 말아요가슴을 두드리지 말아요

 같은 색의 물고기가 지나요

 

ㅡ『시인시대』(2020, 봄호)

 

 


 

김준연 시인

1966년 전북 무주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7년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 <고양이를 입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