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시인 / 하마터면
개망초가 풀인 줄 알고 하마터면 뽑을 뻔 했어요 어디서라도 몸을 세워 겁이 났어요 잎들이 입처럼 많아 하마터면 긴 목을 꺾을 뻔 했어요 개․망․초 하얀 꽃 피우는 들꽃인 줄 몰랐다니까요 문드러지게 밟힌 시간일랑 몽땅 잊어버리고 하늘하늘 웃고 있는 저 들꽃 하마터면 나인 줄 모르고 뽑을 뻔 했어요
이정현 시인 / 비의 음계를 그려 넣다
오선 위에 비의 음계를 그려 넣는다 팔분음표 바람비와 온음표 소낙비를 라와 파에 걸쳐놓고 비처럼 서서 술을 마신다
조르드 샹드로 향했던 쇼팽의 사랑을 불러와 술잔에 따른다 넘치는 술이 바닥에서 빗소리와 뒹군다
술 속에 빗방울이 추적추적 쏟아지고 음표들도 비에 젖는다 88개 피아노 건반 위로 미끄러지는 음계
쇼팽의 빗방울전주곡이 연주된다.
문밖의 빗소리가 교향곡 15번 2악장 후렴구의 비바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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