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건일 시인 / 사르비아 외 2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1.

김건일 시인 / 사르비아

​​

 

피속의 적혈구만을 뽑아서

흰 깨꽃에 칠한 것이다

그렇게

나도 너를 칠해주고 싶다

이승의 업적이라곤

타는 듯한 마음뿐

사르비아

꿈에도 선한 사람은

선하게 보이고

꿈에도 악한 사람은

악하게 보인다

 

 


 

 

김건일 시인 / 땅 1

 

 

막막하다 막막해

사방을 둘러보아도

발붙일 곳 없고

이리저리 손 내밀어도

먹을 양식 줄 사람 없네

 

아버지 어머니가 주지 않으니

형제 자매가 주지 않으니

일가친척 이웃이 주지 않으니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이라도

누구 한 사람 밥 줄 사람 없네

 

아침이 되어도 아침을 못먹고

점심이 되어도 점심을못먹고

저녁이 되어도 저녁을 못먹네

 

배고파라

배고파라

창자에서 쭈르륵 소리가 나도

 

사방을 둘러보아도

먹을 것이라곤 없네

눈뜨고 눈비벼봐도

먹을 것은 없네

 

들에 나가 쑥이라도 뜯어

쑥이라도 짓찧어서

쑥물이라도 한사발 마셔야만

이 배고픔 달래겠네

이 허기진 몸 추스르겠네

 

밭이라도 빌려주소

논이라도 빌려주소

땅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심어

땅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꾸어

먹을 양식 만들겠소

먹을 양식 만들겠소

 

 


 

 

김건일 시인 / 땅 2

 

 

외로워도 내가 외롭고

배가 고파도 내가 고프고

눈물이 나도 내가 눈물이 난다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심는다

내가 잘 곳은

내가 짓는다

내가 입을 것은

내가 만든다

 

내가 딛고 있는 곳

나와 제일 가까운 곳

내가 태어난 곳

 

땅은 나의 애인

땅은 나의 형제

땅은 나의 어머니

 

땅은 부드러운 가슴

손을 대면 땅은 가슴을 열고

전율하며 모든것을 벗는다

땅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면

몸에는 따뜻한 온기가 돌고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벌떡 일어선다

온 힘과 온 정성을 다 하여

땅을 힘차게 끌어안고

땅에다 나의 씨를

묻는다

 

 


 

김건일 시인

1942년 경남 창원 출생. 건국대 국문과 졸업. 1974 <<시문학>>에  <선인장>, <부활>, <생활>, <선유도>로 추천완료. 시집 - <풀꽃의 연가> <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 <꿈의 대리 경작자> <꽃의 곁에서> 등. 2002년 서포<김만중문학상> 대상수상. 제23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재임. (1942~2020.9.3 별세, 향년 7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