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애 시인 / 화병
국화꽃 한 묶음 화병에 꽂아 가을을 들여놓았다
열흘의 개화 열흘의 우울 만개한 꽃송이 밑에 문드러진 꽃 대궁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작은 충격에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심장 박동기 달고 스물네 시간 감시했지만 찾아내지 못한 두근거림 하나 ㅡ화병(火病)입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라는 의사의 말을 나는 참지 마세요, 라고 읽는다
해를 보내기엔 날이 많은데 짧은 계절을 안고 떠나버린 너 추스르지 못한 속내가 긴 밤 문드러진다 두멍에 낀 이끼처럼 더께가 지고 심통을 부리는 몸부림이었다
꽃잎 파르르 떠는 이 가을에 후드득 나는 나를 꺾고 있다
신영애 시인 / 칠월
나는 채 젖어보지도 못하고 조문을 마친 한 송이 국화였다
신영애 시인 / 헛꽃
참꽃을 피울 수 있다고 했다 희미한 향을 찾아 오른손을 담갔으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꽃은 기미가 없었고 후각은 무디어 갔다 기다림은 일요일 오후처럼 조급해지고 중심은 멀어져 갔다 체온은 항상 웃돌았다 온실에서 자란 꽃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꽃잎은 한 점 빛마저 잃었다 둑 너머엔 망초 잎이 자라고 있었다
수정이 필요한 연둣빛 웃음들 흔들리는 갈증은 어디에서 멈출지 타는 듯한 향기에 벌과 나비는 숲을 잃었다
밭을 일궈 꽃을 피워보려는 무리들 계절이 바뀌면 열매를 맺을까 날고 싶었다 바람은 어디로 부는가
각자 써 내려간 낯선 문장들이 저마다 내는 쓴 소리 그 소리에 닿기 위해 지문은 사라지고 귓불에 머물던 향기는 흔적이 없다 유통기한은 길지 않았다
꿀을 주세요 수정해 줄게요
산수국 헛꽃이 아프게 몸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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