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성 시인 / 금강송
쭈뼛거리지 않는다 초지일관 반듯하게 간다
삐뚤빼뚤, 갈팡질팡 그것은 내가 아니다
벼락이 치더라도 하늘을 향하여 곧장 간다
눈비가 쏟아져도 무게를 버리는 일 없다
이종성 시인 / 운리마을
얇은 미농지를 벗겨내듯 아침은 희부연 안개를 한 겹 한 겹 걷어내고 있다. 안개 물러간 자리마다 햇살은 부챗살처럼 퍼지고 새벽같이 보리를 뜯어먹으러 왔던 금슬 좋은 노루가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 산으로 뿔뿔이 헤어져 달아난다. 이웃마을로 이른 마실을 가시던 할머니가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 바가지 욕을 해대는 바람에 겁 많은 노루는 내려오지도 못하고 제 작을 애타게 부르는 귀청 찢는 소리만 앞산에 부딪쳐 메아리친다. 그 소리에 산꿩이 울고 푸른 이불을 덮어쓴 채 잠들었던 들판이 기지개를 켜며 부스스 깨어나고 있다.
이종성 시인 / 꽃비를 맞으며
개나리꽃 소복이 핀 울타리 지나 뽀얀 우윳빛 속살 보이며 보이시한 자태로 한껏 턱을 받치고 있던 목련꽃의 추레한 모습 뒤로 하면 짙은 화장기로 무장한 자목련이 그녀를 지키며 서있다
이팔청춘들에게 딱 이틀만 빌려 놓은 언덕길 한가득 흐드러지게 품고 있는 벚꽃나무 가지 사이로 햇살 타고 나풀나풀 춤사위로 나리는 꽃길 펼쳐진다
아빠가 밀고 가는 유모차 안에선 귀요미 아가씨 휴대전화 검색이 한창인데 길가의 돌멩이에 엉덩이 붙인 늦바람 화가 시인의 공간 찾는다며 헤매이고 종이비행기 날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두 어께가 정겹다
커다란 솜보숭이 맏잡아 든 연인들 어깨에 꽃잎 쌓이며 속삭이는데 어디선가 거리의 악사‘벚꽃엔딩’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간간히 들리는‘뷰리풀’소리는 먼데서 시집온 억척이 아지매 빨리 빨리에 묻혀지는데
마주 잡은 손 흔들며 소곤대는 아빠와 딸의 대화가 수상하다 아빠 나는 꽃잎도 뿌려주는 벚꽃이 제일 예뻐요 은희야 그러면 개나리가 슬프잖아 빨개진 얼굴 가린 손가락 사이로 개나리와 마주친 은희가 쑥스러워 저만치 뛰쳐나간다
때마침 불어오는 샛바람에 찬란히 날리는 꽃비 맞으며 모두가 시인되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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