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희 시인 / 가난한 시인의 노래
늙은 어부처럼 지혜로운 시인은 오래 깁고 기운 언어의 그물을 던져 새벽 바다에 펄떡이는 시어詩語를 풍성하게 거두어들인다 나는 변변한 그물도 마련하지 못한 채 해 돋는 바다에 반짝이는 언어言語떼를 욕심낸 적 있으나 솟구쳐 오르는 한 마리 금어金語를 꿈꾸기도 했으나 저녁 바다에 눈시울 붉어지는 노을이 흐르니 내 서툰 욕망으로 엮은 그물을 걷고 가난한 빈 배를 위해 바다가 펼치는 무욕의 그 노래를 따라 부르리라
―시집『비스듬히 서 있는 당신』(효림, 2013)
이양희 시인 / 끝을 붙들다
끝에 서 있다
배롱나무 가지 끝에 참나리 줄기 끝에 채송화 줄기 끝에 수국 줄기 끝에 이름 모르는 분홍꽃 줄기 끝에 인동초 가지 끝에 백합 줄기 끝에 저마다의 빛깔과 모양으로 도착한 꽃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오느라 꽃까지 오느라 간신히 서 있는 끝은 어딜까 보름 넘게 이어지는 불볕더위에 내몰려 색깔의 끝으로 타들어가는 꽃들 먼 바다를 지나는 태풍의 끝자락에 사정없이 휘둘리며 끝 모르는 끝에 도달하기 위해 끝을 붙들고 끝에 서 있다 장엄한 작은 꽃밭에서 모두가 주인공이다 - 시집 <마음을 걸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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