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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현옥 시인 / 잉여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4.

김현옥 시인 / 잉여

 

 

잉어가 되지 못한 잉여는 슬픈가?

엉엉 울기를 그친 잉여는 화창한가?

어영부영 적막을 돌아다니는 잉여는

언제 잉어가 되어 물속을 헤엄쳐 다닐까?

 

잉여가 되어본 적이 있는 잉어나

잉어가 되어본 적이 있는 잉여만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잉여의 세월을 잉어처럼 헤엄쳐본다

잉어가 되고 싶었던 청춘은 어디로 다 떠내려갔나

 

잉어의 규격에서 멀리 헤엄쳐온 잉여야

세월 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노는 잉여야

잉여의 잉어가 도대체 있기라도 한지 궁금한 잉여야

잉잉거려도 한결같이 여여한 잉여야

영영 어디로 갈 작정이니? 영영 잉여야

 

 


 

 

김현옥 시인 / 꽃보다

 

꽃에게 말거는 울 엄니

꽃보다 향기로워

꽃에게 입맞추는 울 엄니

꽃보다 천진해

꽃을 애지중지하는 울 엄니

꽃보다 사랑스러워

꽃옆에서 사진 찍는 울 엄니

꽃보다 아름다워

 

 


 

 

김현옥 시인 / 인도

 

 

 1

 

 인도의 뿌나에서 MG로드를 걷다가 비보다가 나에게 묻는다, MG가 무엇의 약자 게? 몰라. 마하트마 간디. 아하 인도는 인도구나! 릭샤와자전거오토바이버스자가용사람그리고매연이 잡채다발처럼 뒤엉키는 거리에서 우리 인도로 걸어가자, 그랬더니 비보다, 여기가 인돈데?

 

 印度에는 모든 길이 人道?

 

 거지와개와소와똥이 소품처럼 널려 있는 거리에서 내 속에 구겨져 있던 길은 느시렁느시렁 햇빛 속을 산책하며 바나나를 먹는다 이상하게 印度의 길들은 늘 하품이나 하며 조는 듯해도 천년이고 만년이고 늙지 않을 것만 같다 이상하다, 내 속의 늙은 길이 인도에 와서 춤추는 나뭇잎처럼 천진해지다니! 거지와 개와 소와 똥을 만나도 먹던 바나나를 내주고 싶어진다 印度의 人道가 내 속으로 길을 낸다

 

 2

 

 인도에서 나는

 허공에 수염처럼 뿌리 늘어뜨린

 늙은 보리수나무여도 좋으리

 길에서 느긋하게 쉬다가

 누가 내게 할로우? 하면

 바람에 화답하듯 나도 할로우!

 

-시집 『언더그라운드』(만인사, 2008) 중에서

 

 


 

김현옥 시인

1963년 경북 영덕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9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언더그라운드』 『니르바나 카페』 『그랑 블루』 『룸펜들』이 있음. 현재 〈시·열림〉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