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종 시인 / 민어의 노래
고사리 장마가 지나고 난 바닷길 깊게 패인 여울물 소리에 새우떼의 선잠을 깨우는 밴댕이와 알 품은 병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전장포 앞바다에서는 서남쪽 흑산도에서 진달래꽃 피기를 기다렸다가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롤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 마늘 뽑고 양파 캐어 말리던 늦은 오후, 구년은 자랐을법한 일 미터의 삼키로짜리 숫치를 토방에 눞히고 추렴하여 내온병쓰메에 내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먹고 늙은 오이짠지는 볼 살에 얹어 먹고 고차 참기를 장에는 부래와 갯무래기 뱃살을 쳐서먹고 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 가는 소금으로 엮어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 내장과 간은 데쳐서 젓새우 고추장에 볶아내고 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쳐진 친구에게 내어주고 어랫 턱 위에 붙어있는 입술 살은 두 점 밖에 안 나오니 내가 먹어도 되리 성 싶은 깊은 고랑 주름살에도 꼬리뼈 살을 긁적거리고 있노라면 봉굴수리ㅣ잡옆의 대실 개복숭아는 제법 엉덩이가 빨갛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우 놀던 모래밭을 파헤쳐 집 지을 때부터 플랑크톤이 없던 모래밭에 새끼를 풀어내지 못한 오젓, 육젓이 밴댕이를 울리고 깡다리를 울리고 병어를 울리고 내 입맛 다실 갯지렁이도 없는 바다에 올라 칼끝에 노래하던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 *병쓰메: 3홉자리 작은 소주. 일본말 빙즈메에서 온 말 *봉굴수리잡: 봉굴저수지 옆에 있었던 수리조합의 준말(?)
김옥종 시인 / 복섬
시래기 쫄복국의 가사리 고명처럼 내 오늘 끈적끈적 허니 물밑에서부터 엉키다가 더욱 부적절해지리라 속을 보듬고 냉기를 돌려보내면 온전히 벗은 몸으로 부끄러워하리라 만족시키지 못한 혀끝에 누워 내성을 가진 척 버텨 보아도 너의 치명적인 것은 독이 아니라 애정이었으니
-시집 <민어의 노래> 휴먼앤북스, 2020.
김옥종 시인 / 고등어 구이
여보게 내 연인의 굽은 등을 젓가락으로 보듬었더니 바다는 냉골이었으나 물밑은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만, 화상을 입고 말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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