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란 시인 / 일출
파도가 갯바위 무거운 몸을 씻겨요
바다의 어마어마한 사정을 어찌 알까만
새벽비가 파도 표면에 닿자마자 둥글게 뒤척이고
난 삶은 알을 까다가 경박한 손끝이 찔렸어요
주홍 피 한 방울 톡 동그랗게 솟아요
이토록 둥근 몸에 가시를 숨겼으니
고독한 눈을 감았다 떴다 떴다 감아요
어쩌나~ 최후의 나의 사랑
당신은 죽은 나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
해묵은 옛사람들은 무슨 재주로 다 사라지고
비보다 수척한 물보라의 중보기도만 들려요
이 가느다란 기도가 파도였나 말이죠
나는 당신의 고통 없는 부화 일정한 산란 불안정한 균열 싱거운 떨림
사랑의 낟알을 품은 바다가 어제 해를 밀어 올려요
이럴 때 꼭 조심성 없는 새벽 암탉이 높게 울어쌓아
여명은 반드시 경쾌한가 말이죠
최명란 시인 / 철쭉
꽃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다 함께 웃고 있어요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최명란 시인 / 물 먹지 않기 위하여 노력한 시
그동안 나는 물을 너무 많이 먹었다 물 한잔하고 가라고 바람난 강물이 내 옷깃을 붙잡아도 지금 나는 결코 물을 먹지 않는다 물을 먹지 않아야 내가 물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물이 되지 않아야 내가 물 먹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기어이 물을 먹지 않는다 목이 타고 끝내 몸까지 말라 없어지게 되었을 때 다솔사 마당의 텅 빈 나무 속에 들어가 쪼그리고 있을 뿐이다 쪼그린 채 갈증이 허연 혀를 내밀고 쓰러지면 속이 텅 빈 나무 꼭대기의 하늘로 뚫린 구멍 속으로 하나 둘 눈물 그렁그렁 맺힌 별들을 따먹을 뿐이다 목이 탄다고 물을 먹는 일은 아무래도 물 되는 일이다 목이 탄다고 물을 먹는 일은 아무래도 물 먹는 일이다
-최명란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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